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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따도 Mar 04. 2019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

플랜B가 없는 삶이란

P가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가 회사에서 누구보다 많은 일들을 해왔고 밑에 애들을 닦달하여 많은 성과를 내었지만, 이상스러울만큼 그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들려오는 소식은 P가 아직 다음 직장을 구하지 못해 여전히 구직중이라고 한다. 링크드인에 갑자기 업데이트된 그의 프로필이 그의 다급함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만큼 그의 퇴사 결정은 그에게 갑작스러웠다. 다음 스텝을 준비할 겨를이 없을 만큼.


- 사람을 찌르려거든 깊숙이 찔러야돼. 안 그러면 찌르는 사람이 다쳐.


P가 나를 겁박하려고 했던 말이다. 누가 누구를 찌르고 누가 누구에게 해를 끼친단 말인가. 회사 생활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회사를 떠나는게 두렵기는 하지만 내 자존심을 내팽기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비겁한 사람들에게 충성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게 사는 게 더 두렵다.


- 이런 사람이 우리 조직에 있다는 건 회사 자체의 크나 큰 손실입니다. 내가 조사해 보니 이 사람 최악이네요.


그룹 감사가 나에게 한 말이다. 최악이든 뭐든 제겐 상관없어요. 사실 감사실과 엮이는 거 자체도 좀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연락 좀 덜했으면.


P는 회사 생활이 전부인 사람이었다. 그는 걸핏하면 '난 너희와 달라. 난 단지 내게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해 낼 뿐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목소리가 어쩐지 애잔해서 '그래요.'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요.(그렇게 평생 사세요.)

플랜B가 없는 삶이란 처량하다. 무엇을 위해 P는 그렇게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자신의 양심을 속여가며 일을 했을까. 결국 그의 부재가 그의 공백을 증명하지도 못하는데.


오늘도 기획팀의 팀장 석은 비어있다. 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P가 했던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잘 수행된다.


조직은 톱니 바퀴와 같고 사람은 부품과 같아서 필요한 부품은 금방 대체할 수 있고 조직은 톱니 하나가 빠져도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가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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