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시간 전후로, 둘째 어린이집에 가서 짧은 체육대회에 참석을 했다. 키즈노트 알림장을 잘 보지 않기에 사실, 오늘 몇 시 일정인지도 잘 모르고 있다가 아내에게서 전화가 와서 부랴부랴 참석을 했다. 급히 달려가느라 사실 머리도 감지 않고 갔다. 키즈노트랑 초등학교 e알리미가 UI가 그렇게 사용자 친화적이지 않아, (아니면 내가 무심한 걸까) 애들 활동을 자주 깜빡한다. 그럴때마다 아내의 불호령이 있다.
- 이걸 내가 혼자서 다 챙길 수가 없다고!!!!
내가 제일 나중에 어린이집에 도착을 한 듯 한데, 둘 째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는다. 집에서는 본 체 만 체 하지만 또 이렇게 밖에서 만나면 반가운 모양이다. 평소 답지 않게 내 다리에 철썩 앉는다. 이렇게 공개 수업이나 체육대회 활동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사회 활동을 엿보는데, 한 편으론 뿌듯하고 한 편으로는 애틋하다.
예전에 신앙심이 깊은 이모님이 내게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난다.
회사 생활이야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가는 통로라고. 모난 돌이 수십년간의 풍화작용을 통해, 파도에 씻겨 동글동글해 지는 것처럼, 우리의 뾰족한 자아도 사회생활을 통해 깨지고 업무 고민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동글동글해 지는 거라면서, 그렇게 내 자아를 내려놓는게 성경적이라고 했다. 그러니, 회사 떠날 생각말고 꼭 붙들려 있으라면서. 근데 그거 아세요? 요새는 업무 Tool이나 생산성 Tool 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굳이 대면하지 않고, 감정 소모 없이 시키는 일만 제깍제깍 잘 하면 된다는 걸. 예전처럼 상사에게 깨질 일이 줄어들었답니다만, 그만큼 더 효율화되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건 또 사실입니다.
암튼,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초등학교에서 동글동글해 지는 걸 보는 모습은 한 편으론 뿌듯하고, 한 편으로는 애틋하다. 좀 모나면 어떤가. 특색 없이 동글동글해지는 것보다는 조금씩은 뾰족한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둘째는 집에서는 내가 힘으로나 말로나 제어 할 수 없는 꾸러기 중에 꾸러기인데, 어린이집에서는 이토록 순한 양이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