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 : 스페인 그라나다
저녁노을이 알함브라를 붉게 물들일 때
산 마르코 언덕 위에서 나는 숨죽인 채 그 찰나를 목격한다.
붉은빛은 죽음 직전의 고운 화장처럼 벽돌 하나하나에 세월의 흔적으로 스며들며 알함브라는 마지막 빛을 담아내고 있다.
멀리서 타레가의 기타 소리가 들려온다.
애잔한 선율은 바람을 타고 궁전의 돌담을 스쳐 가며 사라진 왕국의 숨결을 조용히 깨워내고 나는 무너진 제국의 잔향을 느낀다.
알함브라의 추억, 곡 속에 담긴 슬픔은 기타줄이 떨릴 때마다 궁전의 오래된 벽을 울리고 사라져 버린 왕들의 기억 속에 묻힌 오래된 이야기들을 말없이 들려주고 있다.
한때 빛나던 왕국의 영광이 노래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
그러나 그 빛남은 곧 슬픔으로 변해 사라져 버린 꿈처럼 공중으로 흩어진다.
물 위에 비친 찰나의 정원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숨을 멈춘다
헤네랄리페 별궁의 정원 속 나무들이 바람에 속삭이고 작은 물줄기가 낮은 음조로 흘러내리며,
아라야네스, 천국의 꽃 중정의 물 위에 떠오른 궁전의 벽과 아치, 분수의 흐름까지 모두 완벽하게 담긴 그 순간,
너무나 아름다워서 손에 잡히지 않는 꿈을 좇는 듯하다.
나는 순간에 왕이 되었던 것만 같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오자 그 모습은 흔들렸고 손에 닿을 듯하나 손가락 끝에 닿기도 전에 흩어지고 만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나의 것이었으나 내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한때의 영광처럼 불안하다.
그들도 그러했으리라.
왕좌에 앉아 세상을 지배했으나 그들이 쥐었던 것은 물결 속의 환영일 뿐이었으니.
나는 그들이 느꼈을 두려움을 이해할까?
너무나 완전해 보였던 모든 것,
손에 닿을 듯 그러나 닿을 수 없는, 물결 하나에 무너지는 그들의 시대를 나는 내 눈앞에서 보고 있다.
다시,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추억이 내 귀에 들려온다.
물 위에 비친 찰나의 반영이 기타 소리에 일렁인다.
그 속에 담긴 것은 공허함이었을까? 아니면 아프게 남은 추억일까?.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에도, 알함브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타레가의 선율은 시간의 벽을 넘어 잊혀진 왕들의 추억을 물결처럼 끌어내고 기타줄을 스치는 손길 하나하나에 흩어진 영광의 시간들과 남겨진 아픈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바람 속으로 사라진다.
기타의 울림은 이 공허한 순간마저 채우고 나는 잃어버린 순간들의 마지막 숨결을 다시 느낀다.
이제는 안다.
빛나는 순간은 언제나 찰나이고 그 뒤에는 언제나 흩어지는 잔물결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 속에서 조용히 무상함을 마주한다.
저녁 노을은 점점 붉게 타올라, 알함브라의 벽돌을 천천히 삼킨다.
그 끝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져도 알함브라는 여전히 슬픔을 노래하는 장소로 남아 있다.
그 선율이 흐를 때 알함브라는 비어 있지 않았다.
공허함 속에서 피어나는 슬픈 추억, 죽음 직전의 화장을 한 궁전은 타레가의 기타 소리와 함께
마지막 빛을 내며 저물어 간다.
타레가의 노래가 울리는 한 그곳엔 기억의 선율이 가득하고
그 선율은 끝없이 사라지고 끝없이 태어나며 영원히 울려 퍼지고 있다.
#여행 #스페인 #알람브라궁전 #헤네랄리페 #아라야네스중정 #타레가 #알함브라궁전의추억 #미틀레스중정
https://youtu.be/irFE7XdqTnQ?si=Qcxbbqmx3DcBud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