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 : 포르투칼 유럽대륙의 서쪽끝, 호카곶에서의 노래
늦은 오후,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길을 따라,
바람을 좇아 나는 호카곶으로 향한다.
여기, 유럽의 심장이 멈춘 자리,
마침내 도착한 그 순간, 나는 바람의 끝에 선다.
대지의 마지막 숨결이 머무는 그 끝에서 세월이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묵직하게 속삭인다
“이곳이 마지막인가?...”
그저 또 다른 바다일 뿐이라고 중얼거리며,
수평선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는 바다를 마주한다.
“그저 또 다른 바다일 뿐인데…” "그냥 수평선일 뿐인데..."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보지만,
마음은 잔잔하지 않고 가슴은 출렁인다. 나를 향한 질문들처럼.
나는 끝을 향해 걸어왔고, 이제 더 나아갈 곳도 없다는 것을 안다.
이곳 땅의 마지막에서 삶의 가장자리 위에 선 것처럼,
바람은 내 주름진 손을 스치고 내 발자국은 바람에 쓸려가지만,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지나간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한때 이 자리에 중세의 사람들도 나처럼 서 있었겠지.
미지의 바다, 저 너머는 신의 영역이라며 두려워하던 그들.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멈췄을 것이다.
끝없는 두려움과 경외 속에서.
이제 저 바다 끝 세상의 비밀을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바람 속에 묻힌 자들처럼,
끝을 모른 채 발을 디디지 못했던 중세의 그들처럼,
나는 여전히 이 경계 앞에서 미지의 두려움에 발을 묶는다.
지도는 펼쳐졌고, 세상은 낱낱이 기록되었어도,
저 경계, 수평선은 여전히 내 눈을 속인다.
끝을 안다고 믿었지만 그 끝은 내가 발을 디디지 못하는 경계처럼 여전히 멀고도 아득하다.
중세의 그림자가 나의 발목을 잡고,
나 역시 이 끝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왜, 이곳에 서면 우리는 끝을 느끼는가?
나는 안다. 세상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묻는다. 여기가 끝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이 땅의 마지막에서 나는 여전히 경계 앞에 서 있다.
바람은 침묵하고, 파도는 영원한 울림으로 내 불안을 삼킬 뿐이다.
호카곶의 바람도 여느 바람처럼 나를 흔든다.
희노애락의 흔적들, 무겁게 발을 내딛던 순간들,
그 모든 감정의 조각들은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나의 눈은 바다를 응시하지만,
마음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몸은 이제 지친 나무처럼 구부러졌으나,
영혼은 아직도 미지의 바다 너머를 꿈꾼다.
이곳에서 나는 자신의 끝을 느끼면서도, 파도 속에 감춰진 새로운 시작을 본다.
여기, 바람 끝에 서서 나는 그들이 느꼈던 그 두려움을 다시 만난다.
묻고 묻고 또 묻는다.
나 자신을 마주한다. 나는 끝을 찾지만, 끝은 나를 잡지 않는다.
바람은 계속 불고, 파도는 여전히 부서지며,
나는 이 끝에서 끝없는 시작을 또 기다린다.
바람의 끝에서 돌아본 내 인생, 모든 것이 지나간 듯하지만,
끝이란 결국 또 다른 시작이 아니던가?
바다가 말한다.
끝났다고 생각한 곳이야말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물결이라고.
저기, 또 다른 여행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간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경계 앞에 서서
중세의 사람들처럼 두려움과 경외를 품고 흔들린다.
돌아서는 길, 발걸음은 무겁다.
세월은 나를 지치게 했고, 더는 나아갈 곳이 없다는 것도 안다.
이제 바람이 묻는다.
"여기가 끝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대신 파도가 부서지며 나의 망설임을 삼켜버린다.
그리고 파도는 속삭인다.
"끝은, 다시 시작이라고."
나는 여기에 서 있다.
바람이 멈추는 자리에서, 파도가 시작되는 그곳에서.
끝없는 수평선 너머로, 나는 또 다른 나를 찾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이 끝에서 나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바람이 마지막 숨을 내쉬고,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눈을 뜨는 그 순간,
나는 미소 짓는다. 끝과 시작은 언제나 함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