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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부르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음악 (3)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by 헬리오스


2024년 9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예술의 전당에서…


오늘 연주되는 곡은 피아니스트의 깊은 사색과 고독한 독백이 짙게 배어있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다.

가을의 쓸쓸한 정취와 맞물려, 그 선율이 계절 속으로 스며들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피아노 독주로 시작되는 첫 음이 울리는 순간, 한 권의 일기장이 펼쳐지듯, 그 안에는 연주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고백이 담겨 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나는 수묵화가 떠오른다. 화려한 색채를 배제한 채, 오직 먹의 농담과 선의 운율로 깊은 울림을 전하는 수묵화처럼, 피아노의 한 음 한 음은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사색의 물결이다. 그 사이사이의 침묵은 연주자의 독백이자, 말없이 전해지는 내면의 진실이다.

이런 연주는 청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을 위한 소리여야 한다. 세상과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사색이 깊은 피아노 연주다


첫 음부터 이어지는 연주자의 피아노는 강물 위에 비치는 햇살처럼 맑고 눈부시다. 그 선율은 순간적으로 반짝이며 마음을 환하게 밝히지만, 그 빛은 물결 위를 스치고 지나갈 뿐 깊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의 피아노의 맑고 투명한 소리는 겉으로는 찬란하지만 속마음의 숨겨진 이야기는 없다. 잠시 눈부신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하지만, 이내 곧 사라지고 마는 물거품처럼 덧없다.


오늘의 연주에서 장강의 깊은 심연에서 시작되는 감춰진 마음의 울림을 담아내는 것은 과한 욕심일까? 깊은 심연 속에서 나오는 독백의 연주는 마치 강물 아래에서 잔잔하게 흐르는 물줄기 같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깊이를 느끼게 하는 무게감과 감춰진 감정의 울림이 있다. 선율은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지만, 마음속 깊이 스며들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며 들을 때마다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는 소리 그 너머의 고독이 깃들어 있다.


하나는 순간의 찬란함이고, 하나는 영원의 속삭임이다.


연주회장을 나오니 정말 가을은 성큼 다가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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