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 : 이탈리아
삶의 복잡한 문제들이 단순해졌다.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이다.
도시의 소음과 번잡함은 먼 기억처럼 희미해지고, 자연의 소리만이 나의 귀를 채운다.
부드럽게 굽이치며 끝없이 이어지는 언덕, 부드러운 융단처럼 펼쳐진 초록빛의 들판, 이 풍경에 고요함과 깊이를 더하며 곳곳에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 이것이 발도르차 평원의 풍경이다.
지평선은 마치 시간의 경계선을 넘는 듯하고 평온하지만 외로움이 감도는 풍경은 하나의 시간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초원에서 맞이하는 바람 속에는 먼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감이 함께 실려 오는 듯하다.
새들의 노래,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발걸음이 풀밭을 스치는 소리는 알 수 없는 고요함으로 나를 깨운다.
풀밭 위를 나는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옮기며, 내 발끝으로 전해지는 땅의 촉감을 느낀다. 내 발자국 소리는 마치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다리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이곳에서 일상의 피로와 근심을 잠시 내려놓고 나만의 리듬을 찾아 춤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는 느낌이다.
나는 그곳에서 한없이 걷고 걷고 또 걷고 싶다.
여기서 나는 더 이상 시간의 흐름에 얽매이지 않는다.
공간의 이동을 통하여 시간의 소실점에서 영원한 여유와 정적을 간직한 채 나는 서있다.
발도르차 평원은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고독 속의 충만감'을 느끼게 하며 나에게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