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2)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거대한 콘서트홀의 공간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
새벽의 차가움을 뚫고 청명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밝아오듯이 첫 음이 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진다. 마치 새벽안개가 자욱한 호수 위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주고받으며, 하늘이 밝아지고 풀잎이 깨어나는 순간처럼 홀 안에 에너지가 넘친다. 청중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처럼 음악에 반응하며, 활기찬 분위기가 홀을 뒤덮는다.
두 번째 악장이 시작되고 홀은 다시금 고요해지며 피아노의 잔잔한 선율이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숲 속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오로지 피아노의 섬세한 음색만이 청중의 마음속에 울려 퍼진다.
마침내, 마지막 악장. 격정적인 피아노와 강렬한 오케스트라가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우리들은 그 격렬함에 휘말려 들어간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폭풍우의 바다는 공간을 가득 메우며, 모든 감정이 절정의 최고조에 달한 순간, 찬란한 승리의 햇살이 홀 전체를 비추고 음악은 화려한 피날레를 맞이한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날이 갈수록 작곡된 100년 전보다 요즘 현대에 더 잘 어울리는 곡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란한 기교와 세련된 악상의 전개는 음악으로 그려낸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적 풍경화이다.
새벽의 서정에서 시작하여 폭풍우 같은 격정을 거쳐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의 불빛 속으로 이어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그려낸 감정의 대서사시이자 다채로운 현대적 도시의 삶을 팔레트 위에 펼쳐놓은 한 폭의 수채화이다.
이곡은 역시 음반이 아닌 라이브로 들어야 제맛이다.
오직 라이브에서만 무대 위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손놀림과 터지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7월의 더운 여름날 연주된 스티븐 허프의 연주는 한마디로 라이브의 열기를 그대로 전해준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 찬, 여름날의 폭풍우 같은 강렬한 표현”의 연주였다.
1악장은 상대적으로 섬세한 터치와 화려함이 약간 부족하였으나
2악장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부분에서 허프의 따뜻한 음색과 감정 표현이, 3악장의 진폭 큰 다이내믹스와 표현력이 돋보이는 연주였다.
특히 3악장의 폭풍우 같은 격정, 화려한 도시의 불꽃같은 풍경을 부드럽고 섬세하게, 때로는 강렬하고 힘차게, 다채로운 감정적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스티븐 허프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와의 흐름은 약간의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곡의 전체적인 흐름과 균형은 좋았으며 이를 통해 곡의 클라이맥스에서는 강렬한 에너지를, 그리고 고요하고 부드러운 순간에서는 깊은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감정의 모든 것이 연소되어 불길은 이제 멈출 수 없는 화염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며 타오른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율은 불타오르는 감정의 한 조각이며, 그 열정은 연주 내내 마음속 깊이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