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지만 진지한 클래식 음악 듣기 - 연재 (7)
지금까지 나는 주로 음악의 전곡에 대한 감상평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가볍게 들을 수 있으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음악들도 연재 속에 함께 풀어보고자 한다.
한 곡 안에 작은 우주가 담겨 있어, 순간의 빛과 그림자가 완결되며,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음악들이다.
이제는 웅장한 구조와 장대한 서사의 교향곡이나 협주곡뿐만 아니라,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음악의 세계를 함께 걷고 싶다. 너무 아름다워, 혼자 듣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드는 그런 곡들이다.
1841년에 작곡된 이 작품은 쇼팽의 중·후기 야상곡 시기에 속하며, 그의 야상곡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완성도가 높은 곡으로 평가된다. 흔히 ‘비극적 야상곡’이라 불리는 이 곡은 단순히 밤의 정서를 노래하는 몽상의 음악이 아니라, 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신에게 다가가는 내면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의 야상곡 전체 중에서도 가장 성숙하고, 내면적이며, 영적인 깊이를 지닌 작품이다.
이 시기 쇼팽은 왜 이렇게 비극적이고 영적인 깊이의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아마도 이 시기는 그의 생애 중 예술적으로 가장 성숙했지만, 내면적으로는 가장 불안했던 시기의 시작이었고, 쇼팽은 이미 그 불안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1841년은 쇼팽이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프랑스 교외 노앙(Nohant)에서 함께 지내던 시기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창작기였지만, 그 평온은 이미 균열의 전조를 품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점차 냉각되기 시작했고, 쇼팽은 그 미묘한 거리감 속에서 깊은 고독과 내면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이미 폐결핵의 초기 증상을 앓고 있었다. 몸은 약해지고, 기침과 피로가 잦았으며, 조금씩 죽음의 그림자를 의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쇼팽의 음악은 단순한 낭만적 서정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 인간의 덧없음, 그리고 초월에 대한 사유로 옮겨갔을 것이다.
서두의 느린 다단조(C minor) 부분은 마치 깊은 고백처럼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문을 연다. 이윽고 등장하는 코랄풍의 중간부에서는 절망과 희망이 맞서는 순간, 마치 신 앞에 무릎을 꿇고 탄원하는 듯한 울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며, 고요한 체념과 초월의 여운을 남긴다.
단순한 서정이나 낭만을 넘어, 이 곡은 기도와 절망, 그리고 인간 내면의 숭고함을 그린 하나의 드라마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이 곡을 절제된 감정으로 다룬다.
루빈스타인이나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자연스럽고 유려한 흐름이 중심을 이루며, 고통조차 품위 속에 잠긴다.
그러나 이보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이 곡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의 연주는 절제된 품위가 아니라, 고통을 통과한 영혼의 울부짖음이자 그 끝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소리이다.
일반적인 연주가 5분 후반에서 6분대 초반에 머무는 반면, 포고렐리치는 무려 7분 43초에 이른다. 다른 연주보다 많게는 2분 이상 길다. 그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지만, 그 느림 속에 숨과 생명, 그리고 기도와 고백이 있다.
그의 연주는 첫 음부터 숨이 멎는다.
그의 건반 위에서 음표와 음표 사이의 쉼은 단순한 간격이 아니라 ‘숨’이며 동시에 ‘기도’가 된다. 그는 한 음을 치고 다음 음으로 넘어가기까지, 그 사이의 공백을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호흡처럼 길게 늘인다.
그 쉼은 음악의 중단이 아니라, 오히려 영속의 순간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멈추고, 소리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중간부의 코랄에서는 그 침묵이 폭발로 바뀌어, 장엄함보다는 절규에 가까운 호흡으로 변한다.
그 속에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에게 닿고자 하는 간절한 갈망이 공존한다.
일반적인 해석이 ‘밤의 기도’라면, 포고렐리치의 연주는 그 기도 자체의 호흡이고, 절규에 가까운 인간적 고통으로 들린다. 그의 손끝에서 음악은 더 이상 단순한 야상곡이 아니다.
그것은 '숨'과 침묵으로 이어진 인간의 고백, 즉 “기도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 침묵이 되는” 하나의 영적 체험이다.
덧붙이는 말 : 글을 적고 보니 “가볍게”라는 의도와 달리 너무 무거운 곡이 되어 버렸다. 조성진이나 다른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이보다 자연스럽고 편하다. 유튜브에 찾아보면 더 많은 연주를 만날 수 있다.
* 최근의 녹음이라 음질 또한 탁월하다.
https://youtu.be/Q-tGUpF18ew?si=hZ9R1C6I7pljcx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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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어서 연재할 음악들은 아래와 같다.
카잘스 : 새의 노래 (Pablo Casals: The Song of the Birds)
쇼팽 : 마주르카 49번 a 단조 Op. 68-2 (Lento)
라흐마니노프 : 전주곡 23-5
차이코프스키 : 사계 중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