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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잘스 : 새의 노래

어설프지만 진지한 클래식 음악 듣기-연재 (8)

by 헬리오스


어설프지만 진지한 클래식 음악 듣기-연재 (8)


카잘스 : 새의 노래 (El Cant dels Ocells / The Song of the Birds)



날개를 잃어버린 새가 하늘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이 곡을 들으면 마치 날개를 잃어버린 새가 하늘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같다.
그 새는 더 이상 날 수 없지만, 노래만은 멈추지 않는다.
그 노래는 단순한 선율이 아니라, 잃어버린 자유를 향한 마지막 몸짓이며, 상처 입은 영혼이 세상에 남기는 조용한 기도다.


파블로 카잘스 : 20세기 첼로 음악의 상징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는 20세기 첼로 음악의 상징이었다.
그는 첼로를 단순한 반주 악기에서 영혼이 숨 쉬는 악기, 인간의 내면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목소리로 끌어올렸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으로, 그는 연주자이자 지휘자, 그리고 평화를 믿는 인도주의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서가에 방치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악보를 발견하고, 잊혀졌던 그 작품을 세상에 되살렸다.

그는 평생 이 곡안에서 인간의 고독과 구원, 그리고 침묵 속의 진실을 연주했다.
그에게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양심의 언어, 인간을 자유롭게하는 기도의 형식이었다.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 독재가 시작되자 그는 폭력의 시대를 거부하고 고국을 떠났다.
프랑스 피레네 산맥의 작은 마을 프라드(Prades)에 머물며, 고국의 자유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 그는 끝내 스페인 땅을 다시 밟지 않았다.


망명 후에도 그는 음악으로 침묵의 저항을 이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울린 "새의 노래"는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자,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위한 기도였다.
“새들은 하늘에서 자유롭게 노래한다. 인간도 그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그의 첼로는 그 믿음을 세상에 전했다. 날개를 잃은 새가 하늘을 잊지 않듯, 그의 음악도 고통을 통과해 자유의 하늘을 향했다.


당신은 아직, 하늘을 그리워하는가?

"새의 노래"는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 민요로, 본래 크리스마스에 불리던 평화와 축복의 노래였다고 한다.
그러나 카잘스의 손끝에서 이 단순한 선율은 인류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기도로 다시 태어났다.

1961년, 미국 백악관 초청 연주회에서 이미 80대 중반의 노년이었던 카잘스는 이 곡을 연주했다.
그날의 연주는 마치 평화를 향한 한 인간의 마지막 호소처럼 들렸다.


그의 첼로는 날개를 잃은 새의 목소리를 닮았다.

활 끝은 하늘로 오르지 못한 날개처럼 느리게 떨리고, 음 하나하나는 땅 위에 떨어진 깃털처럼 가냘프게 흔들린다.
그러나 그 속에는 절망을 견디며 다시 하늘을 꿈꾸는 힘이 깃들어 있다.

이 곡에는 장식도, 화려함도 없다.
모든 음은 고통과 침묵을 통과한 인간의 진심으로 울린다.

카잘스의 첼로는 슬픔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슬픔이 된다.
그 단아한 음 하나하나가 인류의 양심과 존엄을 일깨우며, 음악은 더 이상 미(美)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존재의 증언이 된다.


카잘스에게 ‘새’는 자유를 잃은 인간, ‘노래’는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숨결이었다.
날개를 잃은 새는 더 이상 하늘을 오를 수 없지만, 그 노래는 여전히 하늘을 향한다.

그래서 "새의 노래"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잃어버린 자유를 향한 기억의 비상(飛翔)이다.
그리고 그의 첼로는 지금도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아직, 하늘을 그리워하는가?”



카잘스 : 새의 노래 (Pablo Casals: The Song of the Birds)

Song of the Birds (Live) : A Concert at the White House

Pablo Casals (Cello) / Mieczyslaw Horszowski (Piano)


https://youtu.be/ASkVvo6pePI?si=dNBEegi-Q5C_Ka_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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