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몸을 낮춘 여름 끝의 빈자리...

무소르크스키 : 전람회의 그림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24)


2025년 9월 5일 예술의 전당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 /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 그리고 오랜 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켜켜이 쌓아온 추억들을 다시 꺼내어, 그 위에 나란히 놓아 본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몸을 낮추면 여름 끝의 빈자리를 무얼로 채울까?

무소르그스키 : 전람회의 그림 (오케스트라 버전/라벨 편곡)

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여름날의 음악을 겨울에 꺼내 듣는다.

작년 9월의 연주회였으니 계절에 어긋난 회상이지만, 음악은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날의 온기와 숨결을 다른 계절로 고스란히 데려오는 힘이 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손끝에 남아있던 메모를 이제야 펼쳐 정리한다. 더 미루면 그날의 떨림마저 흐려질 것 같아서.


미술관 걷기...


나는 가끔 미술관의 고요한 복도를 거닐며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곤 하는데, 나의 연인도 그 고요와 색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색이 겹쳐진 자리를 들여다보고, 붓질의 방향을 따라가고, 캔버스 안에 스며든 숨결을 느끼는 시간을. 그녀도 그런 시간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도 그녀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나는 늘 한 폭의 전시장 안에 서 있는 기분이 된다. 곡이 흐르기 시작하면, 공연장은 곧 갤러리가 되고, 우리는 나란히 작품 앞을 거니는 관람객이 된다. 그래서 이 날의 '전람회의 그림'은 단지 인상적인 관현악이 아니라, 나에게는 그녀와 나란히 걸었던 시간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몸을 낮추면 여름 끝의 빈자리를 무얼로 채울까?


이 곡은 언제나 뜨겁게 타오른다. 그리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한낮을 지배하던 빛은 사라졌지만, 그 열기는 쉽게 물러서지 못한 채 잔향처럼 남아 저녁 공기 속에 스며든다.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은 여름의 마지막 숨결처럼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흐려지는 옛 사진의 기억처럼, 색이 바래도 윤곽만은 또렷하게 남아 마음속 깊은 곳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여름의 잎새들이 바람에 실려 살랑이는 소리는 한여름의 뜨거운 고백이 아니라, 이제는 작별을 준비하는 나지막한 속삭임에 가깝다.


저녁 바람 속에서 두 연인은 천천히 걷는다. 소리를 낮춘 여름의 속삭임처럼, 잔잔한 저녁 바람은 두 연인의 어깨와 팔 사이를 스치며 지나가고, 손을 맞잡은 그들의 손바닥에는 아직도 한낮의 열기가 남아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돌의자가 품었던 뜨거움, 그늘 아래서도 피부를 훑고 지나가던 따가운 온기. 하지만 이제 그 열기는 서서히 식어가고, 대신 가을밤의 서늘함이 목덜미를 스치며 새로운 감각으로 그들을 감싼다.


여름이 남긴 자취들은 이제 저녁의 어둠 속에 묻혀간다. 그 위로 가을밤의 서늘함이 살짝 겹쳐진다. 밝고 강렬했던 날들의 빛은 접히고, 대신 가을의 새로운 시간들이 조용히 자리를 채운다. 더 느린 호흡, 더 맑은 공기, 더 깊은 침묵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낯설고도 선명한 감각. 여름과 가을이 잠시 같은 자리에 서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공존하는 시간이다.


여름의 돌의자 위에는 아직 연인의 그림자가 길게 남아 있다. 뜨거웠던 열기는 식어가지만, 강렬했던 기억만은 놓지 않은 채, 그들은 천천히 가을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음악회장으로 들어가는 문턱에서 둘은 잠시 멈춰 선다. 막 닫히는 계절을 뒤돌아보듯, 식어가는 열기 속에 남아 있는 둘 만의 강렬한 기억을 놓지 않은 채.


뒤돌아보니 여름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여름을 완전히 떠나보내지도, 붙잡지도 않은 그 상태로, 천천히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새로운 계절의 첫 음표가 우리를 맞이했다.


화려한 단풍의 가을을 맞이하는데 손색이 없는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여름 끝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가을의 모습은 빛바랜 그림 위에 새로운 색을 덧칠하는 붓처럼 깊고 풍성한 새로운 계절을 천천히 채워간다.


흑백 사진의 시인의 독백을 닮은 피아노 원곡과 달리 라벨 편곡의 오케스트라 버전은 컬러 사진이 각기 다른 색깔의 대비와 조화를 통해 시각적 풍부함을 표현하고 생생한 현실감과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듯, 이 곡도 우리의 눈앞에 생생한 장면을 펼쳐 보이는 한 편의 대서사시와 같다.

각 악장은 색채가 풍부한 그림처럼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음악적 서사를 청중의 상상 속에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능숙한 지휘자의 손길은 세련된 정교함과 부드러운 강렬함 속에서 악장마다의 고유한 색채와 정서를 마치 세공사의 보석처럼 다채롭고 세밀하게 드러낸다.


첫 번째 프롬나드에서 들려오는 금관 악기의 선율은 가을 단풍이 절정에 이른 숲을 거니는 모습 같다.

도입부의 금관악기의 음색은 가을하늘 아래 붉고 황금빛으로 물든 단풍나무의 잎사귀처럼 빛나고 있으며,

바람에 흔들리며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잎들의 모습처럼, 각기 다른 색채를 뽐내며 공기 중에 퍼져 나간다.

낙엽이 공중을 떠다니다가 땅에 내려앉는 순간처럼, 한 음 한 음은 다가오는 가을에 깊고 풍성한 색을 입히고 있다.

이렇게 음들은 풍성한 황금빛 가을을 예고하고 한켠에서 여름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뜨거운 열기를 남기며 저물어 간다.


비들로의 묵직한 리듬과 낮은 음조의 느릿한 행진곡은 여름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무거운 짐을 나르는 수레처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무거움과 피로를 짊어지고 들려온다.

그러나 수레는 천천히 굳건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여름의 잔재를 뒤로 하고 가을의 문턱을 향해 간다.

가을은 서두르지 않는다. 음악 속의 무거운 걸음은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 아래서 지친 대지가 서서히 숨을 고르면서 가을의 조용한 도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제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이 겨울을 앞두고 서서히 저물어 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 차가운 침묵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말이다. 가을은 이렇게 화려하게 오지만 갈 때는 쓸쓸하다.

화려했던 단풍은 이제 사라지고, 그 뒤에는 차갑고 고요한 겨울이 준비되고 있다.

마지막 남은 낙엽이 바람에 쓸려가는 찰나의 순간처럼, 햇살은 낮게 깔리고, 그 빛은 부드럽게 대지 위를 감싸지만,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이내 사라진다.

나무들은 거의 다 벗은 채 바람에 흔들리며 마지막 떨림에

남은 몇 잎마저도 떨어지고,

떨어지는 잎들은 공중에서 잠시 맴돌다가 이내 땅에 내려앉아 차갑게 식어가는 흙과 하나가 된다.


카타콤 속의 고요함은 이렇게 모든 것이 멈춘 듯한 11월의 가을 저녁과 닮았다.

과거의 계절만이 묻혀 있을 뿐 생명의 기운이 없는 여기에서 오직 시간의 흐름만이 느리게 이어지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 속에서는 오래된 이야기들만이 조용히 속삭인다.

카타콤의 돌벽 속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는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밀려 흩어지는 소리처럼,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지나가며 그냥 사라져 간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이 고요한 공간 속에서 나는 자신과 마주하며 나의 유한성을 바라본다.


화려한 황금빛 장식의 키예프의 대문은 가을의 황금빛과 닮았다.

중후한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강렬한 도입은 거대한 대문이 열리며 숨겨진 세계가 드러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어지는 목관악기들의 부드러운 음색은 과거의 숨결을 담아내어 수많은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하고

대문의 영광을 다시 한번 드러내는 금관악기의 피날레를 뒤로하고

하프와 플루트의 소리 속에 사라지는 음들은 대문의 신비로움과 역사를 기억 속에 남기고 사라진다.

대문을 지나면서 우리는 역사의 경이로움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순간을 경험하듯이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가지와 금빛 카펫처럼 땅 위에 펼쳐진 들판의 가을은 자연이 선사하는 마지막 화려함이자 최후의 아름다움이다.



음악이 멈추고 무대 위 음악의 흔적이 아직도 공기 속을 맴돌고 있을 때

가슴속에 울리던 선율은 잔잔한 여운으로 남아 꿈결 속을 걷는 듯하고 나의 발걸음은 아쉬움과 평온함이 뒤섞여 느려진다.

멀리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그리고 그 속에 스며드는 밤의 속삭임, 여름과 가을이 손을 맞잡고 이별의 춤을 추는 듯하다.

여름의 마지막 인사와 가을의 첫 속삭임을,

이제 곧 찾아올 차가운 밤에 나는 당신을 품고 당신의 기억 속에 머무를 것이다.


이별 앞에서...


공연의 뜨거움과는 달리, 이날은 다비트 라일란트 지휘자가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마지막으로 이끄는 날이었다. 상임지휘자로서의 고별 무대, 뜨거운 선율 속에 작별의 슬픔도 함께 흐르고 있었다.


2025년 9월 5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이날 저녁, 우리는 다비트 라일란트와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3년간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을 목격했다.

무대 위로 걸어 나온 라일란트의 뒷모습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것은 짧지만 깊었던 3년의 시간, 그 안에 담긴 음악적 교감의 무게였을지도 모른다.


이날 연주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그 어느 연주보다도 다채롭고 화려했다.

바다 위로 가라앉는 석양이 마지막 순간 가장 선연하고 깊은 빛을 터뜨리듯, 라일란트는 3년의 시간을 응축해 이 한 곡 속에 온전히 담아냈다.


프롬나드 주제가 등장할 때마다 라일란트는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부여했고, 각 그림들은 생생한 색채를 입고 살아났다. '비들로'의 묵직한 슬픔은 이별의 무게를 담은 듯했고, '튈르리 정원'의 경쾌한 활기는 떠나는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담담한 아름다움이었다. '바바 야가의 오두막'의 거친 에너지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통렬한 고백처럼 울려 퍼졌다. '키예프의 대문'으로 향하는 피날레는 장엄했다.

금관의 찬란한 울림과 타악기의 웅장한 강타가 어우러지며 콘서트홀 전체를 압도했다. 라일란트와 국립 심포니가 함께 쌓아 올린 3년간의 모든 순간이 그 음악 속에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그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는 정교한 건축물처럼 짜임새 있으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생명력으로 맥박 쳤다. 이것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화려한 퇴장이었다. 영광스러운 마침표였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고 정적이 흘렀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고, 기립 박수는 끝날 줄 몰랐습니다. 단원들도 하나둘 일어나 3년을 함께한 그들의 마에스트로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순간, 라일란트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평생을 무대 위에서 보낸 거장이, 수많은 갈채를 받아온 지휘자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3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낸 음악들,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시간에 대한 깊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고별은 끝이 아니라, 각자의 새로운 시작을 향한 아름다운 쉼표였습니다. 그날 밤 예술의 전당을 가득 채웠던 '전람회의 그림'의 웅장한 울림은, 우리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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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Valery Gergiev (Conductor)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https://www.youtube.com/watch?v=R1pK-8q8R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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