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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차 평원의 막시무스를 생각한다.

여행 (5) : 토스카나 발도르차 평원의 막시무스...

by 헬리오스


쇠와 피로 빚어진 황금빛 갑옷 아래, 바람 속에서 떨리는 결단의 눈빛.

막시무스의 그림자가 어둑한 전장 위에 서성인다.

그가 흘린 피는 여전히 로마의 먼지 속에서 붉게 타오르며, 그의 외침은 오래전 들판의 바람 속에 스며들어 울려 퍼지고 있다.

싸움터에서 떨어지는 먼지, 피 묻은 칼날, 죽음을 마주한 그의 침묵 속에서 나는 그의 고독을 읽는다.

그 이름이 내 안에서 울린다. 그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복수, 아니면 단순히 잃어버린 것들의 부재에서 오는 절망을 넘어설 무언가가 있었을까?

그는 이미 사라진 자였으나, 그의 존재는 여전히 불멸처럼 느껴진다.


영화의 새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도, 그의 빈자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그의 무거운 검이 진실을 찢어냈던 순간을,

그의 눈물이 뜨겁게 불타던 시간들을. 그리고 그의 최후의 숨결이 자유를 속삭였던 저물녘의 저 들판을.

막시무스는 이제 별이 되었다. 그 별빛은 우리의 영혼을 흔들며 속삭인다.

"나는 여기 있다. 로마의 먼지와 바람 속에서.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


글래디에이터 2 를 보고 극장을 나서니 밖은 여전히 저녁의 여운을 안고 있다.

차가운 가을밤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어둠 속의 가로등불이 비추는 그림자는 막시무스가 남긴 발자국처럼 길게 늘어진다.

속편을 보고 나왔는데 1편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 6월 다녀온 발도르차 평원의 그가 생각난다.


초록빛 들판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며 들판에는 황금빛 밀밭이 바람에 살랑거린다.

위대한 로마의 장군 막시무스는 죽기 전, 저 먼 곳에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고요한 평온을 자아내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를 지나며 흔들리는 바람소리 속 밀밭을 가로질러 가족을 만난다.

포도송이 영글어 가는 포도밭 위, 태양이 대지의 연인처럼 따스히 내리쬐던 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죽어갔다...


내가 토스카나의 발도르차 평원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마주한 것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밀밭, 포도밭을 지나던 막시무스의 집이었다.

토스카나 발도르차 평원은 부드러운 자연경관과 고요한 정적이 어우러진 곳이다.

넓게 펼쳐진 초원, 부드러운 언덕, 끝없이 이어지는 포도밭은 우리의 삶에 평온함과 안정을 선사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우리 내면의 고통과 감정을 더욱 날카롭게 드러낸다.


저 멀리 보이는 집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홀로 서있는 막시무스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 내 마음은 상실과 외로움, 불안, 그리고 슬픔을 다 잊어버리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을 것이다.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넓은 들판에서 내리쬐는 뙤약볕 속을 가르며, 결국 중간에서 퍽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며 막시무스의 눈가에 맺힌 눈물, 밀밭을 스치며 지나가던 그의 손, 아내와 아들이 그를 향해 웃으며 달려오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내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랐다.

그 아름다운 밀밭의 회상은 나의 삶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아픔을 더욱 깊고 선명하게 새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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