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거장, 카라바조 Caravaggio
‘밤에는 태양보다 촛불이 더 밝다’. 카라바조의 빛도 그러하다.
빛이 없으니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의 빛은 어둠 속에서 채취된 생명의 불꽃이다.
카라바조. 그의 이름을 입술 사이에 올리기만 해도 뜨겁고 무겁게 다가온다.
그 앞에 서면, 나는 그가 창조한 빛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그 속에 휩싸인다.
그는 빛을 뿌리는 신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을 끌어내는 연금술사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처음 느꼈던 그 강렬함. 몸서리치는 경외감.
캔버스 속 빛은 단순한 밝음이 아니라 어둠을 찢으며 피어나는 생명으로 느껴진다.
오늘, 나는 다시 그 생명의 거센 강렬함을 여기서 느낀다.
그곳에서 나는 빛이 어둠에 맞서며 태어나는 생명의 떨림을, 그 어둠이 빛을 삼키며 죽음을 읊조리는 떨림을 보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Caravaggio,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회를 다녀왔다.
모네의 빛은 자연의 리듬, 태양의 빛과 함께 강물처럼 춤추며 세상을 한 조각의 꿈처럼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고흐의 빛은 내면의 열정을, 황금빛 태양과 푸른 하늘 속에 녹여내며 격렬하게 펼쳐낸다.
그러나 그의 빛은 고뇌와 구속, 죄와 구원의 깊이를 담고 태양이 아닌 인간의 고통 속에서 찾아낸 촛불 같다.
빛과 어둠이 대립하는 그곳에서, 그는 생의 본질을 담은 인간의 심연을 그의 빛으로 포착한다.
그는 색채의 화가가 아니다. 그의 팔레트에는 휘황찬란한 색의 향연이 없다.
대신 빛과 어둠이라는 두 개의 대조적 언어로 짜여 있다.
그것은 단순히 명암의 대비가 아니라, 삶과 죽음, 구원과 타락, 그리고 인간 본질의 투쟁을 담아낸 원초적인 언어다.
그는 화려한 색을 입히지 않는다. 단지 그는 빛으로 찌르고, 어둠으로 덮을 뿐이다.
그림 속의 빛은 비명을 지르듯 찢어진다. 그 빛이 닿는 곳마다 어둠이 더욱 짙어진다.
그의 빛은 검은 심연을 가르며 탄생하며, 그 빛은 따뜻하지 않고 서늘하며 가혹하다.
그 찰나의 광휘는 도망칠 길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뚫고 비추며, 심판처럼 단칼에 가슴을 찌르고, 숨겨진 진실을 무자비하게 폭로한다
그의 빛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친다.
억눌린 욕망과 죄의식, 구원의 가능성과 허무를 찰나의 섬광처럼 드러낸다.
그 빛이 닿지 않는 곳에는 어둠이 있다.
하지만 그 어둠은 구원처럼 스며들어 빛이 드러낸 상처를 감싸 안으며, 그 틈새로 숨을 고르게 한다.
그 어둠 속에는 은밀한 쉼과, 생명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숨겨진 생명의 희미한 맥박이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무게이며, 모든 비밀을 삼킨 심연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 갈망, 부끄러움과 마주한다.
카라바조는 삶의 진실을 꾸미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조각난 시간의 파편이다.
그들의 피부는 빛을 품으면서도 어둠 속에 스며든다. 구원의 손길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더 깊은 죄의 무게에 눌리는 것처럼.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가장 초라한 모습과 가장 강인한 생의 의지를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의 붓질은 색채의 단순한 대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극적인 고백임으로 보이며, 빛과 어둠을 통하여 그는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떨림을 그려낸다.
그의 빛은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의 어둠은 나를 삼키지도 않는다.
빛과 어둠이 엉켜, 뛰는 맥박 속에서 나는 떨고, 흔들리고, 나 자신을 마주한다.
* 그림 중 가장 인상 깊었든 것은 "이 뽑는 사람"이다. 마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그림으로 보는듯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이다.
* 다른 하나는 마티아스 스톰 Matthias Stomer의 "조롱당하는 예수"이다. 가장 회화적인 느낌이 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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