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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움의 결, 그 끝은 어디로 흐르는가?

후지타 마오 피아노 독주회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7)



부드러움의 결, 그 끝은 어디로 흐르는가?


2025년 2월 23일 저녁 후지타 마오 피아노 독주회, 예술의 전당.


확실히 내가 즐기는 스타일의 연주는 아니다.

오늘의 연주곡들은 익히 출반 된 그의 음반으로 들어보았으나 그 부드러운 터치가 꽤 인상적이었고 그 느낌이 좋아서 오늘 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그의 연주는 가볍고 부드러운 결이 있지만, 그것이 꼭 얕거나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에만 머무르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해석에는 특유의 유연한 흐름이 있고, 감정을 과하게 밀어붙이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는 절제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절제가 내가 좋아하는 '고요한 호수의 파란 투명함'처럼 차가운 사색이나 깊은 고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크리아빈 전주곡 11번에서 후지타 마오는 스크리아빈 특유의 불안과 신비로운 긴장보다는, 선율의 부드러운 물결을 살리는 쪽에 집중하여 연주를 하였다.

화음이 빚어내는 미묘한 색채감보다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감각이 더 두드러진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이 지닌 꿈결 같은 몽환성과 예민한 신경질적 정서는 음반을 들으면서 이미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신 그의 연주는 부담 없이 부드럽게 다가온다.


쇼팽 전주곡에서도 마찬가지로, 극적인 대비나 깊이 있는 명상보다는 역시 유려한 선율감과 부드러운 터치가 강조된다.

나는 쇼팽의 전주곡들이 지닌 순간적인 시적인 순간들, 특히 섬세한 감정의 떨림과 긴장감을 좀 더 극적으로 다루는 연주를 좋아하는데, 오늘 그는 이를 극적으로 만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가을날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듯, 감정이 과장되지 않고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익숙하게 듣던 쇼팽의 전주곡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후지타 마오의 연주는 ‘고요한 호수의 차갑고 투명한 사색’과는 거리가 있다.

그는 감정을 응축하기보다는 그저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려보내는 스타일이다.

한음 한음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나 색채감 있는 음색보다는투명하고 부드러운 감각적인 유려함을 중시하는 연주자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보면 98년생인데, 이 무심한 듯한 부드러움은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걸까?

서른도 안된 나이에 벌써 삶을 달관해 버린 건지.. 아니면 아직은 그냥 부드러움이 좋은 걸까?

일본 특유의 말랑말랑한 마시멜로 같은 감각도 떠오른다.

연주회장을 들어서는 그의 걸음걸이, 손을 모으고 겸손하게 인사하는 모습. 그 모든 것이 그의 연주와 닮았다..

그저 사람이 부드럽고 조심스럽다.

젊은이 답지 않게 말이다.


스크리아빈 전주곡에서 아래 두곡은 너무 아름다워 숨이 멎을 지경이다.


24 Preludes: No. 8. in F-Sharp Minor - Andante tempo di Barcarolle

https://youtu.be/ISjq31JJv_8?si=01qCql1DDf3M81M9

24 Preludes: No. 12 in G-Sharp Minor - Moderato cantabile espressivo

https://youtu.be/Gn-yrMtNGTk?si=kKktZIiVaDWWwbQE


그의 쇼팽 전주곡과 스크리아빈 전주곡 전체

https://youtu.be/qUAyyek9Mrc?si=ZBwMnkcm0HJam9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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