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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의 교향곡 : 말러 교향곡 7번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와 곁에 둔 음반

by 헬리오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연주회를 다녀온 후 가장 깊이 남은 순간들과 오랫동안 곁에 두었던 음반을 함께 들여다본다.


막은 내렸지만, 음악은 여전히 흐른다 : 연재 (6)


빛과 어둠의 교향곡 : 말러 교향곡 7번 -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

실황연주와 음반 연재 1 :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

멋진 실황 공연을 감상한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이다.

2월 20일 저녁, 롯데콘서트홀에서 말러 교향곡 7번을 들었다. 츠베덴이 이끄는 서울시향의 연주다.


‘밤의 교향곡’이라 불리는 이 곡은 어둠과 빛이 뒤엉킨 몽환적인 여정에,

때로는 밤의 그림자 속에서 불현듯 찰나의 환영이 떠오르고, 때로는 미처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한 리듬과 날카로운 음향이 꿈속의 풍경처럼 흩어지는 그런 곡이다.

한마디로 복잡하고 난해한 곡이다. 그래서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연주가 어려운 난곡으로 꼽힌다.


이 곡이 지닌 몽환적이고 이질적인 요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도 각 악장의 개성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연주의 중심이 단단하지 않으면, 1악장에서부터 흐름이 무너지고, 이후 곡의 구조와 색채감이 흐려져 70~80분 동안 그 무너진 잔해 속에서 관객과 연주자 모두 허우적대는 괴로움에 묻힌다.


그런 점에서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오늘의 연주는 뛰어났다.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표현, 감정의 격렬한 기복을 강조하면서도 묵직한 구조적 토대를 잃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곡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빛과 어둠의 대비,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화려하고도 미묘한 색채감을 섬세하게 살려낸 점이 좋았다.

특히 2악장과 4악장에서 이러한 색채의 디테일이 빛을 발했다.

음의 연결 또한 유려해서, 곡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이 돋보였다.

4악장 도입부에서 들려온 바이올린 선율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고운 실루엣을 그리듯 섬세하고 우아한 소리.

연주가 끝난 뒤 알고 보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악장이 객원으로 참여한 것이었다. 객원이라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아쉬움이 스쳤지만, 그건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의 아름다움, 그저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인 것 같다.

그리고 말러 교향곡에서 늘 그렇듯, 이 곡에서도 관악기의 역할이 중요했다. 오늘 연주의 관악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단단하고도 유연한 울림, 적절한 긴장과 해소가 조화를 이루며 말러 특유의 극적인 장면들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더불어 5악장의 도입부에서 팀파니는 강렬한 리듬감으로 인상적인 연주를 펼쳤다.

이날 공연을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로 만드는 데 팀파니도 한몫했다.


서울에서, 국내 교향악단의 연주로(물론 약간의 객원 연주자가 섞이긴 했지만) 이 정도의 말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지난 1월의 *교향곡 2번 ‘부활’*에 이어, 오늘의 7번,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서울시향의 말러가 더욱 기대된다.


늘 좋은 실황을 들을 수 없으니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내가 음반으로 가장 애청하는 말러 7번 하나 소개한다.


이 교향곡에서 내가 꼽는 명연(?)을 아니 애청하는 연주를 하나만 들라면, 나는 주저 없이 미하엘 길렌(Gielen) / SWR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3)를 소개하고 싶다.


이 연주는 철저하게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연주다.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극대화하면서도, 탄탄한 구조적 골격 위에 극적인 감정의 흐름과 정밀한 색채감을 정교하게 엮어낸 디테일이 너무 좋다.

소위 말하는 명음반, 음악 듣는 맛을 느끼게 한다.


이 곡의 연주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다.

구조적인 완결성, 감정의 드라마틱한 기복, 그리고 각 악장마다 고유한 색채와 섬세한 악기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모든 요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연주가 이 두 가지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잃는다. 구조에 집중하면 색채가 바래고, 색채를 강조하면 곡의 전체적인 윤곽이 흐려진다.


그런 면에서 길렌의 연주는 압도적이다. 이 곡이 빛과 어둠, 꿈과 현실의 경계를 부유하는 거대한 풍경이라면, 길렌은 이를 감정의 과잉 없이, 극적인 고조 없이, 마치 무심한 듯한 태도로 직조해 나간다.

그러나 그 무심함 속에는 냉철한 지성과 계산된 거리감이 스며 있다. 너무나 선명해질 때 오히려 낯설어지는 풍경처럼, 길렌의 말러는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감정적 서사를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7번을 펼쳐 보인다.

그의 말러는 따뜻한 서정도, 인간적인 호소도 강조하지 않는다. 초연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이 기괴한(?) 음악을 탐색하며,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속에서 기묘한(?)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어둡고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공기처럼 가볍고 투명한 음악. 길렌의 연주는 이 곡이 지닌 본질적인 모순과 양가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연주다.


이후에도 이런 연주는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명연이 많지만, 이 곡에서는 단연코 길렌을 추천한다.


* 서울 시향 연주 / 츠베덴 지휘, 2025년 2월 20일 롯데 콘서트홀.

* 미하엘 길렌(Gielen) / SWR 심포니 오케스트라 (1993)

https://youtu.be/Gl2rKKtsmG4?si=wlNjGCqwMHkzb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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