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5
추억은 쌓여간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계절의 결처럼.
우리의 1년도 그렇게
하나씩, 겹겹이 마음 위에 내려앉았다.
처음은, 밤이었다.
맥주잔이 비어갈수록 말은 많아졌고,
새벽 공기 속엔 아직 꺼내지 못한 마음들이 떠다녔다.
그 밤의 웃음과 약간의 어색함,
모든 시작은 그렇게 조용히 피어났다.
시간이 흘렀고,
우리는 책을 건네고, 음악을 함께 들었다.
문장 하나, 멜로디 하나에 담긴 마음을
조심스레 열어 보이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
함께 걸었던 거리.
꽃잎이 어깨에 닿고
바람이 둘 사이를 부드럽게 스쳤다.
그 순간을 나는 계절보다 오래 기억한다.
여름은 길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고요한 여름.
그 속에서 우리는
하루의 소소함을 함께 견디는 법을 배워갔다.
가을엔 단풍이 물들고
기억도 함께 선명해졌다.
조금은 서늘한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손을 놓지 않았다.
황금빛 길 위를 나란히 걷던,
그 오후들이 아직 내 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눈이 내렸다.
하천 옆, 작은 카페.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던 고요한 흰 숨결.
우리는 그날, 눈길을 걸었다.
발자국이 포개지고,
침묵마저 따뜻했던 그 순간
겨울 속에서도 우리는 꽃처럼 피어 있었다.
다시, 봄이 왔다.
5월의 장미는 다시 피고,
강가엔 바람이 부드럽게 흐를 것이다.
이제 우리는 1년의 기억을 등에 지고
또 다른 계절 앞에 서 있다.
추억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것.
우리의 하루하루는
시간 속에 스며든 작은 꽃잎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그 꽃길 위를 우리는 다시 함께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