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내 뒤에서 걷지 마.
나는 누군가를 이끌 만큼 강하지 않아.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나도 모르겠고,
길을 찾는 척하며 헤매고 있을지도 몰라.
네가 내 발끝만 바라보며 따라올 때면
그 무게가 내 어깨에 고스란히 얹혀와.
내가 멈추면, 너도 멈춰야 하고
내가 돌아서면, 너까지 어딘가 잘못 가는 것 같아
괜히 두렵고, 미안해진다.
친구야, 내 앞에서 걷지도 마.
나는 너만큼 빠르지 못해.
네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내 마음엔 외로움이 차오른다.
서둘러 따라가려다 숨이 차고,
결국 네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 채
나는 조용히 걸음을 늦춘다.
그 거리엔 아무 말도 없지만,
나는 천천히 너를 잃어가고 있다.
속도가 달라도,
눈길이 머무는 풍경이 달라도 괜찮아.
그러니 친구야,
내 옆에서 걸어줘.
걷다 멈추면
나처럼 같이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봐주고,
내가 한숨을 쉬면
그 옆에서 괜히 하품이라도 해주는 사람.
우산이 하나뿐인 날엔
어깨 한쪽이 젖는 걸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햇살이 따가운 날엔
서로의 그림자 안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사람.
길가에 핀 들꽃 앞에서
“예쁘다”는 말 하나로 함께 웃을 수 있고,
목이 마르면 같은 음료를 골라
벤치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마실 수 있는 사람.
말없이 있어도 편안한 사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는 몰라도,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한 관계.
내 뒤도, 내 앞도 아닌
그저 나란히 걷는 거리에서
너와 나는,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친구야,
내 옆에서 걸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