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정지된 꿈, 흐르는 풍경 : 내소사에서(2부)

산행기 (5) : 내변산 관음봉에서 내소사까지의 산행기 (2부)

by 헬리오스


산행기 (5) : 2025년 5월

정지된 꿈, 흐르는 풍경 : 내소사에서 (2부)

- 내변산 관음봉에서 내소사까지의 산행기 (2부)


산은 오르기 위한 곳이 아니었다. 숲은 말을 하지 않았고, 절은 시간을 멈춰 세웠다.

5월의 내변산과 오래된 꽃문살, 그리고 병산서원의 강가에서 나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머무름’이라는 감정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 글은 그날의 숨결을 따라 적은, 백제 무왕의꿈과 조선의 침묵 사이를 지나며, 결국 ‘나’라는 이름의 풍경앞에 멈춰 선 기억의 문살 위에서 쓰였다


[1부에 이어서... ]

https://brunch.co.kr/@brunchbluesky/90

다시 걷기 시작하니 전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굵고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들이 촘촘히 서서 하늘을 찌를 듯 위로 뻗어 있었다. 그 숲길을 지날 때, 나는 걷는다기보다는 하나의 통로를 통과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빛도 소리도 누그러지는 그 구간을 지나며 나는 어느새 오늘이 아닌 어딘가에 와 있다는 예감에 빠져들었다.

내소사 경내에 닿았을 때, 나는 전각의 단정한 선과 대웅보전의 기와보다 한 꽃문살에 더 오래 눈길을 머물렀다.


그 꽃문살은 정말이지 화려했다. 화려하다는 단어가 소박한 절집의 공간에서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 나무의 결 위로 조각된 꽃들은 단단하고, 섬세하고, 반복적으로 피어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생기가 없었다.
그 나무문에 새겨진 꽃은 지금 막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피어 있는 채 수백 년을 견뎌낸, 정지된 생의 형상이었다.
피지 않으면서 시들지도 않는, 시간이 머물다 굳어버린 고요의 문양. 마치 바람이 닿지 않는 계절, 더 이상 피지도 지지도 않는 순간, 영원히 반복되는 기쁨의 동결. 나는 그 정지된 시간에서, 오히려 뭔가 깊고 슬픈 감정을 느꼈다




그때 떠오른 이름 하나, 백제 무왕. 서동요의 주인공이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한다. 나라가 기울고, 산과 강이 무거워질 때 사람들은 돌과 나무로 사유의 집을 지었다.
나라의 끝자락, 다시 문명을 일으키려는 의지,
그 마음이 한 송이 꽃으로 나무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그 꿈의 흔적이 이 조각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왕은 내소사의 이 꽃문살을 보았을까?
아니면 이 문살은 그가 보지 못한, 그러나 그의 꿈이 새겨진 무늬였을까?
그 꽃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어쩌면 부흥의 염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제가 다시 꽃필 수 있으리라는, 문화와 예술, 불법과 사유가 다시 번성하리라는 마지막 시선의 흔적.

그러나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꽃문살은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 있다.

나는 그 꽃잎의 반복에서, 인간이 시간 앞에서 품는 무의식적인 버팀의 형식을 보았다. 영원히 피어나기 위해 영원히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것. 결국은 그것이야말로 무너짐을 견디고, 시간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이었다. 시간 안에서 멈춘 아름다움은 정교하지만, 더욱 슬프다.
생기보다는 정적, 기쁨보다는 체념이 느껴졌다.

그 꽃들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생의 찬란함보다 무너짐을 견디는 고요에 가까웠다.


나는 그 꽃문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누군가 그 조각을 만든 손길의 의도보다, 그 조각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마음을 붙들었다.
조용히, 말없이 피어 있는 그것은 백제의 마지막 꿈이자, 지금을 걷는 내게 전해진 오래된 숨결이었다.

과거의 무게는 이 산의 흙속에 잠겨 있었고, 그 기억의 마지막 화려함은 문살로 남아, 지금 내 눈앞에 조용히 피어 있다. 나는 산을 내려와 다시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왔지만 그 문살 하나는 내 마음속에 아직도 닫히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 문은 무왕의 꿈이 통과한 자리이고 이 산행에서 내가 가장 깊이 슬픔과 조우한 지점이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고요는 오래된 꿈과 내 지금의 숨이 겹쳐지는 자리였다.
꽃은 피어 있으나 지지 않고 굳어버린 시간 속에서 나는 백제의 마지막 마음을 본 듯했다.



그러다 문득,

작년 9월, 병산서원을 다녀온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나는 안동의 병산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병산서원은 낙동강과 맞닿은 들판 위, 산기슭에 넓고 낮게 펼쳐져 있었다.

단풍이 들기 전, 가을의 기척만 머물고 여름의 기운이 아직 남아 있던 계절. 서원은 담장을 낮게 세워 밖과 안을 분명히 나누지 않았다. 건물들은 풍경 안에 놓여 있었고, 풍경은 서원 안으로 스며들었다.

내소사의 꽃문살이 안으로 오므려진 선(禪)이라면, 병산서원은 바깥으로 퍼져나간 유(儒)의 결이었다.

저 멀리 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병산서원, 그곳은 서애 유성룡이 병산을 바라보며 화산에 터를 잡아 세운 서원이다.

임진왜란의 격랑 속에서 나라를 지킨 그가 은거하며 만든 사유의 공간.

그는 조용한 풍경 속에서 삶을 정리하고, 사유를 풀어내고, 말보다 침묵으로 제 후학들을 기다렸을 것이다.


나는 병산서원 마루(만대루)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서애 선생의 모습을 상상한다.



병산서원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었다. 서원에서의 배움은, 강의하거나 훈계하는 일이 아니라, 풍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되묻는 일이었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아닌 공간이 가르침을 품고 있고, 침묵이 말보다 오래 남는 방식으로 사유를 이끄는 듯했다.


나는 그날 그곳에서 ‘지나가는 것’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내소사의 꽃문살이 고정된 꿈의 형상이라면, 병산서원의 강물은 움직이는 깨달음의 이미지였다. 하나는 멈춘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사라지며 남는 풍경이었다.


내소사 앞에는 강이 없다. 대신 숲이 있다. 숲은 바람과 그림자의 언어로 절을 감쌌고, 그 안에서 사람은 목소리를 낮추게 되었다. 병산서원엔 숲이 없지만, 강이 있다. 강은 흐르며 배움을 잊게 했고, 그 망각 속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오래도록 되새기게 했다.


두 공간은 구조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둘 모두 사람을 ‘비우게 하는 공간’이다.


내소사에서 나는 백제의 마지막 꿈을 보았고, 병산서원에서는 조선의 조용한 퇴장을 느꼈다. 그리고 그 둘 사이를 걷는 나의 발걸음은, 어느새 시간의 표면을 스치는 묵음의 문장이 되어 있었다.

꽃은 피어 있으나 시간은 멈췄고, 강물은 흘러가지만 그 물살 안에는 끝내 전하지 못한 부유하는 마음들이 있다.

내소사의 꽃문살이 단단한 나무 위에 새겨진 꿈의 형상이라면,

병산서원의 강물은 움직이는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거듭 비추는 사유의 거울이었다.


이렇게 두 공간은 모두 사람을 멈춰 세우는 장소였다.

하나는 바깥을 가두고 안을 열어주며, 하나는 안을 비우고 바깥으로 스며든다.

하나는 시간에 새겨진 꿈이고, 하나는 흐르는 물에 녹아든 성찰이었다.


생각이 멈추고,

욕망이 잦아들고,

말이 스스로 사라지는 그 공간.


나는 이 둘을 모두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 나 역시 어느 자리엔가 조용히 놓여 있다.

이 걷는 마음이, 이 멈추는 시선이,

언젠가 또 누군가의 풍경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소사와 병산서원이 내게 그러했듯,

이 발걸음도 또 하나의 여백이 되기를.


* 내소사의 꽃문살이 새겨진 대웅보전은 조선 인조 (1633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니 엄밀히 말하면 꽃문살은 백제 무왕(633년)과는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소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절이니.. 꽃문살을 새긴 목수(조각가)가 무왕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상상해 본다..


#내변산 #관음봉 #내소사 #꽃문살 #대웅보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지된 꿈, 흐르는 풍경 : 내소사에서(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