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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Sep 11. 2015

가상 유서遺書

이렇게 밤도 저물어 갑니다.


이렇게 밤도 저물어 갑니다.

온통 만연한 가을 냄새는 귤 익는 소리와 함께 곧 겨울을 몰고 올 테지만 ,

올해는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 눈 보다도 찬 귤을  함께 까먹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미운 삶이었습니다.

자랑스레 내밀 재주 하나 없었고

그렇게나 바랐던 재능의 유무는 항상 의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생각도 신념도 없이 시간에 떠밀려 선택을 하고,

남들을 쫓아 허겁지겁 지식을 주워담았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스물이 넘어가도록 간절한 것 하나 없었고, 좋아하는 것 조차 찾지 못한.

이렇다 할 취미도, 가슴 절절히 생각나는 사람 하나 없었던  스물넷.

그저 그렇게 흘러가듯 살아온

한심하고, 한심한.

청춘.


한창 젊은 나이에 마지막을 밟고 섰음에도 아쉬움은 남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차라리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다만, 다만. 부모님. 당신께 남은 죄책감을 어떡해야 할까요.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언제나 짜증과 칭얼거림도 부모란 죄로 받아주셨던 것 다 압니다.

당신 이마에 패인 주름이

오늘따라 더 가슴이 아픕니다.


당신의 고단한 하루는, 제 어떤 날들보다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신보다도 먼저 가는 딸을 용서하세요.

부디, 용서해주세요.





  2014. 가을










+) 당장 내일 죽는다면.. 이란 생각으로 써봤던 유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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