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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Sep 20. 2015

네가 세일러문보다 쪼금 더 나아

풋사랑


세일러문을 가장 동경하던 나는 세상은 내 편이라 믿는, 누구 하나 무서울 게 없던 왈가닥 계집애였다. 쉬는 시간이면 공을 쫓기 바빴고 여름방학 새카맣게 탄 피부는 훈장이라 여기던 8살. 


유독 네게 툭 쏘아져 나가던 말투와 기껏 하는 대화란 투닥거림뿐이던 우리. 인사는커녕 그저 스치는 시선에도 숨을 멈추던,  볼 빨간 사춘기를 앓던 여름. 남자애라면 적으로만 알던 선머슴에게 너는 봄보다도 찬란한 무언가였다. 아무렇게나 닦던 땀 범벅의 얼굴로 네 앞에 서면 괜스레 고개를 숙였다. 남자애 마냥 짧은 뒷머리가 새삼 속상해지던 내가 앓은 최초의 부끄러움. 


' 네가 세일러문보다 쪼금 더 나아. '


이해 못할 내 말에 너는 어떠했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건 내 나름대로의 고백이었는데.

아마 내 일생, 어느 순간도 다신 그 시절 같은 순수는 없겠지 싶었다.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순수가 이제서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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