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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홍 Mar 03. 2016

늙은 버드나무

여든 일곱번째의 겨울, 그리하야 몇백번째의 계절


구태여 기다림을 말하진 않았다.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정숙이

그 시절의 미덕이었고


깊은 산자락까지 총성이 울리던

정란의 시대였으므로.


대신 고운 손으로 어린 가지를 꺾어

징표처럼 쥐여준 아낙은

붉어진 눈가로

몇 번이고 손을 마주 잡았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날 동안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버들나무 아래 정화수를 놓고

치성으로 빌던 아낙은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버드나무를 기웃거리다


일이 끝난 저녁이면

새벽별이 뜰 때까지

버드나무 아래를 지켰다.


같이 보낸 어린 가지가 떠올라

아낙과 함께 지평선을 살피던

다섯 번째 겨울,


아낙이 버드나무 아래

눈 이불을 덮고 잔 밤


깨지 않는 아낙을

마을 사람들이 데려간 후로

아낙은 더 이상 버드나무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았다.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해

아낙이 왔으면 했지만

아낙은 오지 않았다.


여든일곱 번째의 겨울,

그리하몇백 번째의 계절.


노을에 무너지는 지평선을 보며

이제야 체념한다.


너는 오지 않겠구나.

끝내, 오지 않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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