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 팀장으로 가라고요?
직업군인의 길을 결정하고 중대장 교육을 받으러 장성 상무대에 입교 후 교육 과정의 절반정도가 지날 즈음. 내 귀에 대고 ‘너 다음 근무지는 특전사야’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가분류라는 일종의 명령은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혈기 왕성한 대한민국 육군 대위였지만, ‘특전사’라는 새 글자는 무척 낯설고 겁이 났다. 특전사 근무 경험이 풍부했던 선배는 딱 세가지를 물었다. ‘술 잘 마시니?’, ‘축구 잘하니?’ ‘수영 할 줄 알아?’
내 대답은 ‘아니요’, ‘좋아는 하지만 잘은...’, ‘수영은 못해요’ 였다. 함께 명단에 오른 2~30여 명의 동기들의 면면은 내게 더 큰 좌절감을 줬는데, 대부분이 체육학과 출신이거나 전 부대가 특공이라는 점. 난 일반 보병사단 박격포 소대장, 사단 전속부관, 대대 작전항공장교 였으니... 관계자들이 흔히 말하는 아스팔트 경력. 특전사라니 뭔가 행정상의 오류가 있음이 분명해, 그러길 바랐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잠도 잘 못잤을거고, 밥맛도 없었을 거다. 이런 혼란과 두려움에 종지부를 찍게 한 건 뜻밖에도 몇몇 특전사 발령 동기들의 행동 덕이었다. 그들은 수업 중간 중간 특전사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어필을 시작했다. ‘난 무릎이 않좋다’, ‘저는 허리가 아파요.’ 등등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병밍아웃(병+커밍아웃)들... 정말이지 병맛이었다. 정식 명령은 아니지만 한 나라의 장교들이 그것도 대위씩이나 처달아 어깨가 꽉찬 공무원들의 행태가 정신 차리게 했다. 그 후로 난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기혼자 숙소 단지에 위치한 수영장까지 달렸다. 그리고 수영 강습을 받았다. 매일같이 10km 넘게 달렸고, 수료하는 날까지 자유영과 평형까지 습득했다. 물론 맥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면 골아떨어졌고 과제고 나발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던 만큼 수료 성적도 창피한 수준이었다. 난 그만큼 급박했고, 살기 위해 몸부림 쳤다. 그렇게 내 인생에 특별했던 특전사 4년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