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6

#T.P.O. #등산 #리더

by 정썰

리더의 행동을 등산의 예를 들어 T.P.O.와 연관 지어 이야기해볼까 한다.

시작은 동기부여다. 흔히 등산 무리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상을 찍고 내려오려는 본질에 충실한 파가 있고, 내려올 산 뭐 하러 올라가냐며 초입 파전집에서 막걸리를 흔드는 파가 나머지 하나다. 후자를 산에 오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아니면 나는 어떤 제안에 오르기 싫은 산에 오를까 생각해 보자.


무리 지어 산을 오를 때 리더의 자리, 위치(place or position)는 지형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달라야 한다. 출발한다. 잠깐, 산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등산로가 잘 나있고 중간중간 이정표가 명확한 산인지, 지도나 GPS를 들고 길을 찾아서 올라야 하는 산인지. 우선 전자의 경우를 기준으로 가보자.

자, 출발 초기 리더의 위치는 어디가 좋을까? 경험상 체력과 의지력이 가득한 초기에는 팔로어의 옆에서 걷는 게 좋다. 시야가 넓게 확보되고 비교적 넓은 길은 함께 걷는 거다. 이때 리더의 말은 어떤 게 좋을까? 대화 소재와 대화의 방식도 T.P.O. 를 고려해야 한다. 가벼운 대화면 좋겠다. 억지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되도록 들어주는 게 좋다. 호흡이 가쁘지 않을 땐 팔로어가 말을 하게 하고 고도가 올라가고 체력이 떨어질 구간부터는 리더가 이야기해야 한다. 함께 오르는 구성원 하나 하나와 보조를 맞추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모든 인원과 번갈아가며 나란히 걸어라. 수가 많아도 산길에서 개인 거리가 넓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길이 좁아지고, 땀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면 리더는 휴식의 시기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필요한 것들이 리더의 백팩이나 주머니에 있으면 좋다. 여분의 물이나 껌, 사탕, 초콜릿 등 작은 것들이 힘을 줄 수 있는 시기다.

DGIST에서 조교 역할을 잠시 하던 시절. 학부 신입생들과 함께 겨울 비슬산을 오른 기억이 있다. 여학생 하나가 두껍고 무거운 겉옷을 입고 왔다. 등산이 처음인 거다. 사전 고지를 통해 좀 더 강력하게 복장과 휴대품목을 알려줬어야 했다. 아무튼 이런 복장의 취약점은 더위와 무거움으로 초반에 지친다는 거다. 덥고 무거워서 겉옷을 벗었는데 허리에 묶기도 어깨에 두르기도, 말에 걸기도 버겁다. 내가 들어줬다. 악바리 근성이 있던 그 친구는 결국 그리 늦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정상에서 옷을 건네주며 명언하나 제조. ‘중간에 버겁다고 삶이 주는 부담과 무게를 쉽게 버리지 마라. 곧 다시 꼭 필요할 때가 온다.’ 겨울 정상의 기온은 낮고, 바람은 더 세다. 겉옷이 없으면 얼어 죽는다..


초입과 중간 능선의 평평한 길에서는 시선을 멀리하고, 가파른 경사지에서는 발끝만 보며 걷는다. 대게는 알려주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이렇게 따른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그 힘든 순간순간 정상을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줘야 한다. 그게 눈을 통해서든 머리를 통해서든 포기보다는 인내가 유리함으로 독려해야 한다. 길이 가팔라지고 좁아지면 리더의 위치는 가장 앞에서 시작해서 가장 힘든 팔로어 뒤에서 이어가야 한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땐 뒤에서 살짝만 밀어줘도 큰 힘이 된다. 호흡법을 알려주는 것도.


정상에 오르면 리더가 할 일은 딱히 없다. 할 말도. 정상에서 각자가 느끼는 감회는 저마다 조금씩 다를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라도 리더의 말보단 진하고 감미롭다. 정상을 느끼게 해 주면 그걸로 다 한 거다. 아들 녀석이 초등학생 때 살집이 좀 붙고 몸이 무거운 시기였다. 등산은 고사하고 걷는 거도 싫어하던 시기. 어쩌다 지리산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이 산을 조금 가깝게 했다. 녀석의 감성과 앞으로의 삶에 미칠 영향은 긍정적일 거다.


내려오는 길은 맨 뒤에서 전체 행렬을 관찰하며 맨 뒤에 가는 구성원과 이런저런 감회를 나누며 내려가자. 이 때도 물론 입보다는 귀를 여는 게 좋다.


첫 산행이 주는 감흥과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이 다음 산행에 대한 호불호를 결정하는 건 말할 거 없다.

‘나를 따르라’식의 리더 행동이 필요할 경우가 있고, 이처럼 다양한 자리, 다양한 위치가 필요할 경우가 있다. 무얼 선택할지에 대한 메뉴열이 있냐고? 다양한 경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자신이 만들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리더의 체력은 기본값이다. 등산체력은 평소 산행을 통한 훈련으로 길러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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