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 #초기효과 #각인 #순서
리더는 어떤 식으로 팔로어들에게 인식되어야 하는가? 리더의 조건이라 할만한 인격적, 지식적 최소한의 역량은 갖춰야 직급과 직책이 잘 작동할 수 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구성원들도 안다. 리더가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없다는 것을. 솔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솔직함에 전제되어야 할 덕목이 신뢰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다.
진심이어야 하지만, 때론 의도적일 필요도 있다. 일부러 자잘한 약속을 만들고 반드시 지키는 전략은 의외로 상호 간에 큰 믿음을 쌓는다. 초기에 이런 믿음이 쌓이면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믿음의 큰 물줄기는 쉽게 마르지 않는다. 다만, 초기를 너무 짧게 잡아서도 안된다. 때론 지루한 의심과 확신의 널뛰기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난 소대장 직책을 1년 정도 수행했는데 초기가 6개월이었다. 6개월 동안 꾸준하게 신뢰를 쌓았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켜야 할 땐, 함께 했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켰다. 최소한의 품위는 주로 말과 행동으로 반영되는데 흔한 말로 초기에 깜보이면 회복이 어렵다.
특전사 팀장에 막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제주도 전술훈련장에서 저녁에 간식으로 빵과 우유가 지급되었다. 하사 두 명이 간식을 분배하는데 나랑 동갑이었던 상사 담당관에게 가장 먼저, 다음이 중사 몇 명, 그다음이 나였다. 사실 난 빵돌이다. 출출하고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냥 받아먹을 순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특전팀장의 권위?를 듬뿍 담아 욕설을 버무려 빵을 나눠 돌리던 하사들에게 면박을 줄까?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지만 방법론적 측면으로 난감함이 더 컸다.
내 앞에 빵과 우유를 내미는 하사에게 말했다. ‘나 빵 안 좋아해, 니들 더 먹어라’ 3일 동안 저녁이면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첫날, 빵을 안 먹는다는 내 선언에도 하사들은 내게 3순위가 된 빵과 우유를 내밀었고, 난 최대한 온화한 표정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4일째 되는 날. 동갑내기 상사 당당관이 하사들을 나무랐다. ‘야 인마. 팀장님 먼저 드려야지.’ 3일 동안 그 시간이면 모두가 날 주시하고 있었던 거다. 어쩌나 본 거다. 그 당시 내가 처음 생각처럼 하사들에게나 담당관에게 계급과 직책을 앞세워 면박을 주고 분위기를 휘저었더라면 난 어쩌면 임기 내내 빵에 환장한 팀장으로 험담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담당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면, 해피엔딩은 어려웠을 거다. 경우 있고, 상식적인 담당관을 만난 게 개인적으로 행운이기도 했지만 리더는 늘 구성원들이 출제한 시험에 맞서게 되고, 순간순간의 점수들이 합쳐져 정해진 초기 점수는 임기 내내 내 리더십의 근간으로 작용한다. 그들보다 현명하고, 그들보다 품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한 특전맨들과의 기싸움이 끝나고 인정받고 자리 잡는데도 6개월이 걸렸다. 길고 지루한, 하지만 찰나의 순발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욕을 잘 못하는 편이기도 했지만 절반이 욕설인 그들과의 대화에서도 초기에는 절대 욕을 섞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나 내 입에서 나온 욕설은 일종의 친화력으로 작용했다. 순서다. 어느 시기에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다. 그 시기를 잘 못 판단하거나 무감각하다면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다. 초기의 구멍은 구멍으로 남고, 리더가 하는 행동에 대해 판단하는 팔로어들의 준거점이 된다.
첫인상에 많은 걸 담아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리더상으로 각인된 후엔 친구처럼 함께 가면 된다. 가끔 그런 행동을 오판하거나 리더십에 대한 도전적 행위를 하는 구성원들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새긴 리더상은 보편적인 구성원들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아 자정작용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친구 같은 리더. 그 이상적인 관계는 첫인상으로 출발한 리더십 초기효과로 각인된 확고한 리더상 위에 가능하고, 기능한다. 잊지 말자. 순서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