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

20240613/목/맑음

by 정썰
#수어 #사랑해

수어(手語 / Sign language) : 음성 대신 손의 움직임을 포함한 신체적 신호를 이용하여 의사를 전달하는 시각 언어.


세상에 3월 8일 생은 얼마나 많을까? 그보다는 적겠지만 ’73년 3월 8일 생은 또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사람들 중 둘이 아는 사이가 될 확률은 또 얼마나 될까?

하루짜리 서울 자유여행의 날. 같은 날 태어났지만 서로 너무나 다른 친구와 오랜만에 점심 약속을 잡았다. 친구는 수어통역사다.

수어통역사(수화통역사)는 농인(청각장애인)과 청인(비장애인) 사이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수행하는 전문가다. 가끔 TV news 오른쪽 아래 동그라미 속에 커다란 몸을 구겨 넣고 손보다 표정으로 말하는 친구는 촛불집회 수어통역 영상으로 살짝? 유명하다. 궁금했다. 같은 날 태어난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회덮밥에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며 시작된 지난 2년 동안 살아온 이야기는 자리를 옮겨 아아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서야 대충 마무리됐다. 재미있는 발견. 우리 둘은 구간만 좀 다를 뿐 삶의 사이클이 닮았다.

그래서 가끔 연락하면서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채무감으로 잘 살아내자는 덕담을 가장한 협박으로 헤어졌다.

저녁은 수제햄버거에 맥주 한 잔. 자기 분수를 일찍이 알아버린 박사님은 오래전 늘 그랬듯이 맛있는 저녁과 커피를 사주고 야근에 돌입했다. 고해성사스럽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늘 그랬듯이 또 한 번의 위안과 격려를 얻었다. 선배는 인생 맛집이다.

두 건의 만남은 소원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어색함이 없다. 살아보니(아~ 꼰대스럽다)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난다는 건 흔치 않은 행운이다.

짧은 하루. 말이 통하는 둘을 연달아 만나 쏟아낸 중년 남자의 수다. 긴 시간의 공백을 그득하게 채운 시간. 어쩌면 수어처럼 느껴진 삶의 몸짓으로 나눈 비밀스러운 대화들.

아내가 예약해 준 이태원의 도미토리. 자유여행의 마무리로 적격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던 유안진 님처럼 나도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꾼다. 수어지교(水魚之交)를 꿈꾼다. 좋은 꿈을 꿀 거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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