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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vs. 강하

by 정썰

추락의 경험이 있나요? 제 기억 속 첫 추락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1학년 무렵입니다. 동네 친구네 정원(당시 제 시선엔 꽤 넓어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작은 화단 정도였지 않나 싶습니다.)에서 빨래줄을 잡고 놀 때였죠. 친구녀석이 매달린 내 몸을 밀었고, 빨래줄을 잡은 손이 미끌어지면서 아래로 툭! 바위에 머리가 부딪쳤는데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간질거려서 긁었는데 끈적한 피가 작은 손바닥에 넘쳐났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높이가 1미터나 되었을까? 아마 그보다 낮았을 겁니다. 부상 정도로만 보면 추락사고가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그 높이가 조금 민망하긴 하죠. 추락을 정의 하는 기준 높이는 얼마나 될까? 얼마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에서 케이블카 추락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는데 약 15미터로 추정되는 높이는 많은 인명을 앗아갔습니다. 추락을 정의하는 높이는 그 물리적 정도와는 큰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군인으로 4년 동안 특전사에서 근무했던 저는 강하조장 자격이 있었습니다. 군을 떠났고 주기적인 자격유지 강하를 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자격이 없습니다. 3천 피트 높이 뜬 비행기에서 특전용사들에게 강하지역 접근을 알리고, 준비 시키고, 밀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마지만엔 저도 뛰어 내렸습니다. 솔직히 비행기 동체의 문에서 뛰어내릴 때는 두려움을 느낄 경황이 없습니다. 비행 속도가 일으킨 미친 속도의 바람이 제 알량한 몸둥이를 독수리가 병아리 채가듯 홱!하고 물어 뱉어주니까요. 정신없이 일만, 이만, 삼만... 외치다 보면 빠르게 내리꽂던 내 어깨를 쑤욱 끌어 올려주는 반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강하에는 낙하산이 필수 입니다. 높이에 따라 자동으로 낙하산을 펴주는가, 자신이 직접 산개시켜야 하는가의 차이가 있지만 낙하산이 있기에 뛰어 내릴 수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추락과 강하의 차이를 낙하산의 유뮤로 정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낙하산을 매고 작전이나 훈련과 관련 없는 곳에서 떨어진다면 낙하산의 산개여부과 무관하게, 그건 추락 아닐까요? 목적지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떨어져야 강하일겁니다. 설령 낙하산이 없어도 강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계속 아래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좀 흘러서 실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봐도 아직도 바닥이 보이지 않으니 추락이 분명합니다. 이래선 안된다고 정신줄을 다잡습니다. 등 뒤에 뭔가 짊어지기는 했는데 이게 잘 정비된 낙하산인지, 오래전 개그프로에서 본거처럼 책가방일지 알 수 없지만, 다시금 목표를 목적지를 찾으려고 버둥거려봅니다.


누구나 용기를 내서 목표를 향해 뛰어내렸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놓치고 부유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무리 속에서 떠밀려서 목적지 없이 뛰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필름을 거꾸로 돌려 원위치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지면과 대면할텐데, 그 순간이 예상치 않은 시간, 공간 일 수도 있고 계획한 시간과 공간일 수 도 있겠죠. 저도 지금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놓쳐버린 목표는 잊고 새로운 목표를 찾을 겁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강하를 즐기려합니다.

저는 특전사 생활을 통해 30여 회의 강하를 경험했습니다. 기구에서, 헬기에서,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 전에는 늘 긴장되었고, 착지가 가까워 올수록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낙하산이 펴져서 잠시 떠있는 동안에는 평안과 낭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름이 스쳐지나고 저 아래 펼쳐진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고 떠있다는 느낌보다는 날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이왕 떨어진 인생, 추락이 아닌 강하로 살아볼랍니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싯구처럼 날개가 없다해도 낙하산이 끝내 펴지지 않는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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