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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나는 아재

아재, 아재? 봐라 아재!

by 정썰

눈치를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말장난을 좋아합니다. 아재개그라 하더군요. 썰렁하다고 진저리를 치는 사람(제 아내)이나, ‘피식’하고 동정인지 인정인지 모를 리엑션을 주는 친구들은 그만 하라고 경고를 하지만, ‘언어유희’라 칭송(?) 받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그만 둘 생각이 없습니다. 방금 ‘아재 개그’의 정의를 확인차 들어간 포털에서 마주친, ‘신하가 왕과 헤어질 때 하는 말은? (정답은 3글자)라는 문제를 풀어내면서 므흣해지는 전 자타공인 아재입니다.(그런데, 넌센스 퀴즈를 잘 맞춘다면 센스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넌센스가 있는 걸까요?) ‘위키트리’라는 사이트에 나온 장황한 내용을 나름 요약하자면, ‘나이 많은 사람들은 유행하는 유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재미없는 유머를 아재들이 하는 개그라고 하며, 언어유희형, 넌센스형, 고전 개그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미국과 일본에서도 아빠가 하는 개그란 의미로 ‘Dad joke’, ‘おやじギャグ’ 라고 한다’ 입니다. ‘90년 생이 온다’라는 책에서 MZ세대들은 재미없는 건 못참는다고 했다죠?(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재미없는 개그의 대명사가 된 아재개그는 부정적 의미에 가까울테고, ‘아재’라는 단어도 그 멍애를 나누고 있는 듯 합니다. 친구의 SNS에서 ‘아재 탈출’ 뭐 이런 투의 포스팅을 보면서, ‘아저씨’, ‘아주버니’의 낮춤말, ‘삼촌’의 방언인 이 단어가 ‘꼰대’라는 이미지를 주는 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말이 나온김에 뉘앙스가 비슷한 표현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합니다. 아침에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면서 즐겨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라떼와 얼죽아’라는 꼭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50대인 DJ가 라떼 역할을,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는 20대 여기자 두분이 얼죽아를 맡아 주로 요즘 MZ세대의 문화와 언어 등을 라떼에게 알려주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얼죽아는 아닙니다. 말장난을 좀 하자면 ‘떠죽따’(떠 죽어도 따듯한 아메리카노) 정도 됩니다. 결론적으로 ‘라떼’는 아니라는 방어선을 친겁니다. 그런데 듣다보니 저도 ‘라떼’더라고요, 아들녀석에게도 ‘아빠 때는 말야’하면서 무언가 교훈을 주는게 아빠가 아들에게 해야할 최소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꼰대짓을 해온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라떼’는 추억을 위한 펙트의 나열을 넘지 말자. ‘아빠가 너 만할 때는 이런 과자도 감지덕지였어’가 아닌 ‘아빠가 너 만할 때 이 과자 참 맛있게 먹었었는데, 지금도 맛있네.’ 정도로.

이리저리 아재에 대한 변론을 해대지만, 50이라는 숫자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숫자임에는 분명합니다. 특히 지금의 저처럼 뭐 하나 이룬거 없고, 주변을 둘러볼 때 초라한 모습이라면 그 중압감이 더 합니다. 마음은 급한데 해오던 일에는 큰 진척이 보이지 않고, 뭘 새롭게 시작하려니 문송한 군 출신이라 막막한. 어디다 티를 내기도 마뜩찮고, 조언을 구하기도 머쓱한 나이. 전환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50을 접는선으로 정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후반부에는 꿈꾸는 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참고서 삼아 그대로 살아보려 합니다. 그래서 100세가 되는 날 정산을 하고 가겠다는 굳은 다짐입니다. 내 시작은 라떼였으되 그 끝은 얼죽아리라.


공자처럼 하늘의 명령을 알지 못하지만 하늘의 명령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궁금해 지는 지금, 저는 신나는 아재로 살아갈 즐거운 상상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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