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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나는 아재

序썰 ... 지금은 육아(育我) 휴가중

by 정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시인을 동경하며 살아왔습니다. 한 때는 그렇게 부끄럼 없이 살고 있다는 오만과 착각 속에 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난 부끄럽습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날 부끄럽게 만듭니다. 이것이 코로나 펜데믹이 가져다준 우울감인지, 쌓여온 나이가 던져준 갱년기 증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정신승리로 하루 하루 살아가다 ‘덜컹’ 하고 멈춘 하루...

15년 근속한 군을 떠나서 멋모르고(지나고 보니 정말 무식해서, 용감해서 시작할 수 있었던) 보험세일즈 세계에 발을 들이고 좌충우돌 10년. 원하던 시간적 자유는 얻을 수 있었지만, 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세상에 뭔들 호락호락하겠습니까마는...) 입사 초기 ‘힘들지? 후회하지?’라고 묻던 군복 입은 친구의 물음에 ‘힘은 드는데, 후회는 안해’라던 단호함은 들쭉날쭉한 수입과 실적이라는 성적표 앞에 무너지던 자존감으로 휘청거리기도 했습니다. 입사 스피치(흑역사로 남을 거 같은)를 들은 제 메니저 동기분의 ‘챔피언(보험사 마다 명칭이 다른데 제가 몸 담은 P사에서는 이렇게 부릅니다)감이 들어왔다’는 피드백과 10년 만에 들은 ‘6개월 견디다 퇴사할 줄 알았어요’라는 입사동기 LP(Life Planner)님의 평가 사이에서 갈수록 후자의 선견지명에 놀라며 이지경(?)까지 왔습니다.

영업을 못하는 제게, 영업을 할 수 없는 핑계가 더해지면서 반백수처럼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이 화들짝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이라는 부분이 빠져나가 버린 ‘하루’의 구멍을 착실하게 매우기 위해 달리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자격증 공부를 규칙적으로 하려고 노오력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회피할 수 없는 생계의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일 할 계획을 세우면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않은 자유로운 시간에 예전부터 더디게 준비해 온 자서전을 마무리해야할 절호의 시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원치않게 찾아온 휴식기, 아니 공백기에 ‘육아(育我)휴가’라 명명하고 중년의 ‘나’를 다시 돌아보고, 다시 살아갈 ‘나’를 준비하는 한 방편으로 책쓰기를 택했습니다. 오래 전 ‘백년을 살아보니’라는 노학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1920년생 철학자를 통해 알 수 없는 삶의 지혜를 얻고 싶은 욕심과 100세의 나이에 출간된 책에 대한 경외감(또는 신기함?)으로 꾸역꾸역 읽었던 기억. 그리고 두 가지 자문. 나도 자서전류의 책을 쓸 수 있을까?, 나도 100살까지 살 수 있을까?

생각 같아서는 밤을 세워 단숨에 뚝딱 한 권 쓰고, 하루종일 푹 자고, 다시 생활의 전선으로 뛰어들고 싶습니다. 되도록 집중해서 마무리하고 저는 다시 생활 속으로 뛰어 들겁니다. 제가 그토록 경멸하며 뛰쳐나오려 했던 기계적인 반복 속으로,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그 전과는 조금 낯선 곳으로...


서시로 시작해서 참회록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새 날을 위한 거름으로, 삶의 끝자락에 우뚝 설 무성한 나무의 밀알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50대 아재의 넋두리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기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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