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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20240824/토/

by 정썰
#발원지 #억지

호텔 조식 후반부… 기분이란 게 잡쳐버렸다. 식빵에 달걀프라이 반숙, 베이컨에 치즈를 올려 덮어 마련한 조식의 마무리를 한 입 베어 먹고 남긴다. 밥맛이란 게 사라졌다. 식욕과 아까움을 이겨낸 기분 나쁨과 자존심 상함. 깐족거리는 아들의 말투에 정치인을 언급한 게 화근이었다. 정색하는 둘의 공세가 시작된다. ‘정치병‘이라는 비난과 ’애국자 나셨네‘, ‘차라리 정치를 하세요’라는 비아냥. 평소에 농담처럼 받아넘기던 것들이 목에 걸렸다. 참을 수 없었다. 소리 지르고, 상을 뒤집고 싶은 충동을 삭히며 오랜 전 식당에서 얼굴이 벌게져 소리 지르던 아버지 모습이 겹쳤다. 차라리 말을 말자. 묵언 돌입. 내 짐만 먼저 챙겨 나와 용연동굴을 돌아 나오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으리라.


전국 최고지대 동굴(해발 920미터) 타이틀을 자랑하는 용연동굴. 올라갈 열차(닮은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길 닿는 곳곳에 자랑거리다. 어제 다녀온 황지연못은 낙동강 발원지고 검룡소란는 곳은 한강 발원지라고.


이 삐침과 묵언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아빠, 엄마.


태백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낙동강, 한강까지 흐른다는 게 놀라웠다. 이 나이가 되도록 물려받은 못난 성격을 고치지 못한 것도 놀랍다.


여행할 기분 아니라며 집으로 가자는 둘. 예전 같았으면 지기 싫은 마음에 그렇게 했을 거다. 참았다. 바꿔야겠다.


정선 5일장에 들러 점심 먹고, 장보고 유야무야, 그럭저럭, 별일 없던 거처럼 돌아왔다.


앞으로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걸로, 아들한테도 말은 좀 더 조심하는 걸로,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발끈하고 말 안 하는 행동은 버리는 걸로.

발원지 탓도 그만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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