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실 나처럼 아는 척하고 살아온 사람도 드물거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던 형에 비해, 전 책을 너무도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만화책도 별로였으니까요. 그런데 아는 건 많다는 소릴 듣고 싶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 검색이 쉽고, 어디서나 너튜브 같은 동영상을 볼 수 없었던 당시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저의 이 당돌한 소망을 이뤄줄 방법이 있었으니, 바로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된 짧은 기사나 요약글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로 받아서 말로 풀어먹을’ 떡잎 파란(?) 새싹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깊이가 뻔히 보이고,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물어보는 걸 무척이나 꺼려했습니다. 대입을 핑계로 얇디 얇은 ‘앎’으로 지탱해왔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선 뭔가 보완이 시급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정치경제 연구반’이라는 학과내 동아리에 가입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그 때도, 지금도 잘 이해 못하는 책들을 무턱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너무도 느렸고, 제법 두꺼운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앞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만큼 더뎠습니다. 어쩌면 소설보다 시를 좋아했던 이유도 시의 짧음이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활자의 압박은 저를 괴롭혔습니다. 가방이 무거워졌습니다. 독서 습관을 들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틈만나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읽으리라… 다짐하며 책을 넣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식보다 어깨 근육이 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래도 어릴 적보다 독서 속도와 양이 늘었고 지금은 조금씩 습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신이 생겼습니다. 독서와 운동은 습관으로 자리 잡지 않으면 제아무리 많은 시간과 쾌적한 여건이 주어져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알아갈수록 아는 척 하지 않고 모르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빈도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후반기에는 밥벌이에 쏟아야 할 시간이 줄어들고 그만큼의 시간이 제 주위에서 얼쩡거리겠지요. 그 때 습관처럼 책 읽고 글 쓸 수 있도록 지금도 전 퇴근 후 주어진 짧은 휴식시간에도 배우고 써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물론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눈을 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