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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휘테커

turn down? or turn up?

by 정썰

뜻하지 않게 몇 달을 백수로 지낸겁니다. 백수가 아닌 척 하려고 달리기도 열심히하고 이것저것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보냈습니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려울 수 있다는 걱정보다 당장의 수입이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알바처럼 새롭게 시작한 일은 100평 가량 크기의 2층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주 5일, 아니 주 3일을 꿈꾸며 일하던 제가 주중 하루 쉬면서 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게 된 겁니다. 첫 날 영화 ‘인턴’의 주인공 휘테커(로버트 드 니로)처럼 일 해 보리라 낭만적으로 출근했던 저는 밤 9시가 다 된 시간에 식탁에서 저녁밥을 넘기며 울화가 차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분하고 비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공부 잘하는 범생이었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대학을 다녔고, 장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고, 전역 후 고생은 했지만 시간적 여유를 부리던 제가, 남들 노는 휴일을 포함해서 주 6일의 최저시급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겁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하루 하루 전 많은 걸 돌아보고 배우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50 이후의 삶에서 갑자기 이런 직업의 단절이 온다면, 내가 살아온 경력과 능력이 쓸모 없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학력과 경력이 한 계단 내려 서는데 장애물이 된다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감이지만 하루 앞도 알기 어려운게 인생인거 같습니다. 운좋게 지금의 패턴을 지속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우리는 언제든 더 낮은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저 처럼 문송한 분들은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한 가지는 준비해 둬야 한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매장을 향하면서 오늘도 수행하러 간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일 하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 일을 더 할지 모르겠지만 전 앞으로 지속적으로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에 도전 할 겁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라도 게의치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젊은 몸뚱이와 마음가짐으로 살기로 다짐해 봅니다.


매장 출근 첫 날, 아내는 도시락을 건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대학 때도 못해 본 알바를 하러가고, 난 아들한테도 못 싸준 도시락을 쌌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오늘 하루도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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