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9/금/맑은 후 흐림, 때때로 비
강아지 빵 안돼요.
문해력이 다소 떨어지는 (아내 평) 나는 애견 빵도 파는 집인 줄 알았다. 큰 글씨만 보고. '매진(sold out)' 알림인 줄 알았다.
아래 작은 글씨로 쓴 문장을 보고 강아지가 사는 카페라는 걸 알았다.
빵 달라고 쳐다봐도 주지 말아주세요
강아지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으면 아파요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방문이다.
쉬는 날이면 아내랑 카페 도장 깨기 중이다. 괴산, 진천 등지에 흩어져 있어 평소 아내가 가보고 싶었지만 멀어서 가보지 못한 예쁘거나 커피가 맛있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들. (지금까지 두 곳은 세 가지 범주를 두루 만족시켰다.) 도청 앞 하일. 이곳은 집에서 가깝다. 아내는 개인적으로 비건샌드위치가 맛있었다고 했다. 진저 라떼 맛이 궁금하다고 해서 몇 주 전에 함께 찾았다. 오후 한 시 좀 넘어서. 시간 선택이 신의 한 수다. 주변 관공서 공무원들의 핫플로 밀물 시간과 썰물 시간이 명확하다. 썰물 때를 맞춰 진저 라떼 각 한 잔씩. 진한 생강향이 주는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어제는 일정상 계획된 새로운 카페에 갈 여유가 없어서 점심 겸 다시 찾았다. 출입문을 밀자 댕댕이 목줄이 보인다. 산책 전인지, 후인지 모르겠다. 암튼 녀석이 안에 있다는 얘기. 검은 털 푸들. 첫 방문 때도 슬쩍 와서 눈빛을 주고 갔다. 곁은 잘 내주지 않는데 잊을만하면 한 번씩 쓰윽하고 다녀간다. 목카라(명칭 찾는데 한참 걸렸네)를 걸고 테이블 옆에 와서 그냥 그윽하게 쳐다본다. 안내문(혹은 경고문)을 못 봤다면(사실상 못 볼 수 없다. 벽 곳곳에 부착) 빵을 조금 뜯어 줄 뻔했다. 영롱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의도를 알 거 같다.
'뭐라도 좀 줘봐'. 주지 않는다. 귀여운 댕댕이의 건강을 위해.
재물을 좀 주세요. 주시면 안 될까요? 돈이 좀 필요합니다. 이제 좀 주실 때도 되지 않았나요? 성경통독 5회 차 도전 중인 철없는 집사의 기도는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아파트 중도금이 벅찰 때, 접이식 자전거가 필요할 때, 전기차가 필요할 때... 큰돈이 필요할 때마다 십자가 앞에 쓰윽, 착하고 애절한 눈빛. 안 주신다.
큰돈 안 돼요… 부탁드립니다.
오 지저스. 아직 담을 그릇이 안 되는 거다. 어쩌면 평생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번호를 조합해 본다. 나도 모르게 때를 주실지도 모르니.
주시지 않으면 않는 대로 감사. 혹시 주시면 아파트, 자전거, 전기차만 해결하고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약속.
p.s.
투표 안 돼요.
표 달라고 쳐다봐도 주지 말아 주세요
불량 정치인은 정상 정치인이 받을 표를 받으면 아파요(국민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