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트로스

플라스틱 소비자의 고해성사

by 정썰


Albatross. 슴새목 알바트로스과의 조류. 더블 이글(double eagle)에 대한 영국 용어로, 한 홀에서 그 기준 타수보다 3타수 적게 홀아웃한 것.

편의점에 들어선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점심. 창가에 앉아서 치킨도시락 먹기, 혼밥에 도전한다. 700W 1분 40초, 1000W 2분 10초. 과거 원칙주의자였던 나였다면 전자렌지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져 정확한 시간 만큼 돌려야 했을거다. 원칙따위. 과감하게 2분 돌려서 먹는다. 창밖으로 지나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원칙을 버리고 산지 꽤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편의점 도시락을 먹을 때의 원칙은 반드시 지킨다. 음식물 남김 없이 싹싹 긁어 먹기. 그런데 오늘따라 빈 도시락 용기가 눈에 밟힌다. 후식으로 챙긴 콜드브루커피 통도..

다큐영화 알바트로스를 봤다. 한 시간 사십분 동안 귀엽다가, 슬프다가, 아프다가, 두렵다가, 미안하다가 엔딩 자막이 올랐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태평양까지 흘러들면, 어미 알바트로스가 목숨 걸고 물어다 새끼들에게 준다고. 성장한 새가 섬을 떠나 날아가기 전, 무게를 줄이려 토해내지만 크고 날카로운 플라스틱들은 남아서 결국 태어난 곳에서 짧은 생을 마치게 한다고. 재활용도 한계가 있으니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고.

간편하고 운치있게(?) 한끼를 잘 때웠지만, 난 그냥 건너편 식당에서 혼밥을 해야 했던건가.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고, 내가 줄인들, 아니 왜 내가 줄여야 하는지 억울한 시대를 살면서, 어쩌면 내 생각 없는 행동들이 인고의 세월과 아픔을 참아내고 이제 막 날아오르려는 알바트로스의 목을 조른건 아닌지.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 아들녀석 이름으로 환경단체를 정기후원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작년, 6개월 정도 중지했었다. 6개월 후 일언반구도 없이 다시 이어진 후원에 분개했다. 아직 월 3만원이 아쉬웠다. 몇 번이나 해지를 하려다 귀찮아서, 자꾸 까먹어서 못했다. 환경보다는 내 주머니가 중요했다.

크리스 조던(사진작가, 다큐영화감독)은 말한다. 모두가 미드웨이 섬에 갈 필요는 없다고, 함께 나누는 공감과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지금 미드웨이에 서 있고, 앞으로의 길은 희망적일 수 있다고.

편의점을 나서면 난 또 이 핑계, 저 핑계 플라스틱을 즐기며 살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보다 3할 정도 적게 써볼까 다짐해 본다. 감독이 이 멋진 다큐를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열어놨다니 여러분들도 한 번 보시길 권해본다. 나도 아들과 함께 또 볼 생각이다. 솜털 같은 흰제비기러기와 만다라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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