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달려라 달려야 하리
참으로 단순한 동작.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참으로 단순한 호흡.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참으로 단순한 운동. 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한 시간 동안 10KM 달리기.
일주일에 두세 번 달렸다. 처음엔 몸을 위해, 언젠가부턴 맘을 위해.
정해진 코스를 정해두고 꾸준히 달렸다. 처음엔 새벽에, 언젠가부턴 한낮에. 십 년에 조금 못 미치는 세월을. 허리 디스크라는 복병을 만나기 전까지.
달리기는 꽤 만만해 보이는 운동이었다.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커다란 장점. 그래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대단한 장비도 필요 없는. 값비싼 장비를 선호하진 않지만, 창고엔 검도, 테니스, 배드민턴, 골프, 야구, 축구, 농구 관련 장비들이 그득했다. 시작할 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고, 중단하고도 언젠가 다시 할거 같아서 버리지 못했다. 레슨비, 장비 구입비, 회비 등 만만치 않았다. 반면, 달리기는 쓸만한 러닝화만 한 켤레 있으면 될 거 같았다.(웬걸, 그 후 모자, 양말, 선글라스를 포함한 계절별 러닝 웨어, 휴대폰 착용 밴드, 블루투스 이어폰, 스마트 워치까지, 세 살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렇게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을 훌쩍 넘어 달리기는 생활이 되었다.
러닝앱에 10KM 거리목표를 세우고, 암밴드(나중에 허리 밴드로 바꿨다. 팔뚝에 피가 안 통해서..ㅠ)에 음악이 재생된 휴대폰을 넣고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운다. 천천히 내딛는다. 익숙해지고부터는 몸 푸는 동작을 따로 하지 않는다. 500M에서 1KM 정도의 거리를 천천히 달리면서 몸을 푼다. 호흡은 자연스럽게 유지하다 숨이 가빠지면 규칙적으로 바꾼다. 팔은 되도록 적게 흔들고, 다리는 땅을 밀어낸 후에는 최대한 힘을 빼고 경쾌하게. 1/24. 달리기 루틴.
달리면서 생각이 정리되기도,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다. 호흡이 두 다리를 따라잡지 못하는 날도 있었고, 몸뚱이가 호흡을 놓치는 날도 있었다. 뒤에서 날 휙하니 앞질러 달리던 넘사벽 러너도, 반신불수의 몸으로 힘겹게 산책을 하시던 어르신도 모두 교훈이고, 스승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코스였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이, 날씨가 날마다 조금씩 달랐고, 계절을 따라 변하는 풍경은 지루함을 달래주었다. 5KM 반환점을 돌아온 출발지에서 맞이하는 뿌듯함은 동이 터온 아침이건, 가로등이 켜진 저녁이건 빛처럼 크게 번져 가슴을 벅차게 했다. 어떤 컨디션에도 10KM는 한 시간 내외로 달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쯤, 몇 번의 10KM 공식 마라톤 완주의 경험을 믿고 하프마라톤에 도전했다. 달리기 목표가 생애 풀코스 완주니 도전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 한 번의 교훈. 반환점을 돌아 16KM 지점을 지날 때 골반 쪽에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배가 너무 고팠다. 마침 음료대가 보였고, 아이코 이게 웬 바나나! 10KM 코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간식이 떠억!! 결국 난 두 개 정도 양의 바나나와 물을 몇 컵 마시고 나서야 비루한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었다.(남은 5KM는 걷다 달리다를 반복했다. 골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은 부족한 10KM 러너.
'돈 벌 기회는 다시 올지도 모르지만, 건강할 기회는 다시는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 마치 의무처럼 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최소한의 몸관리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강도가 강해지면서 달리는 날이 점점 줄었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온 허리디스크. 달리기는 멈췄다.
한 달 전부터 탁상 다이어리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MTR 5KM, SQ 105, PU 15(5.4.3.2.1)' 최소 주 3일 이상은 단지 내 GYM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Morning Treadmill Run + Squat + Pull-up. 새로운 운동 루틴.
가끔 M이 A(fernoon)나 N(ight)으로, 15가 10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0.5/24로 재활을 시작했다. 아직 몸상태도, 시간도 로드런 10KM를 허락하지 않지만. 생애 풀코스 완주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
다시 달린다.
아직 달릴 수 있고, 달려야 한다.
꽃잎 흩날리는 어느 봄날, 42.195KM를 사뿐사뿐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