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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05화

#여행

푸른 배낭에 언덕을 매고...

by 정썰

여행과 마트 장보기의 공통점은?


아들녀석이 대여섯살 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마트에 장보러 가자 하니 싫다 했다. 사지도 않을거면서 마트는 왜 가냐는 거다. 뿔이 난듯한 말투.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다 빈손으로 돌아온지 며칠이 지난 날이었다.

그 장면에서 웃음이 났다. 결혼 전 나와 닮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처럼(이라는 표현이 위험한걸 알지만 그 당시 난 내가 상당히 평범한 축에 속했다고 생각한다.) 마트에 가는 이유는 내가 지금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그냥, 기분전환차, 구경하러...등등은 쇼핑의 이유가 아니었다. 사지도 않으면서 커다란 카트를 밀고 배회하는 건 그냥 교통비와 시간을 흘려버리는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니 여행은 어떠한가. 딱히 그 지역에 볼일이 있어야 했다. 갈 이유를 만드는 일은 결혼 후 아내를 따라다니면서 배웠다. 그 때 내게 여행은 마트 아이쇼핑(Window shopping)보다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매우 불합리한 일종의 노동이었다.


그렇게 여행에 부정적이었지만, 결혼을 했으니 신혼여행은 가야했다. 물론, 준비하는 전과정은 아내의 몫이었다. 바쁜 부대일정에 결혼식도 눈치보면서 치른 난, 근 일주일이 걸릴 여행이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허용된 최초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 여행. 태국 후아인으로 떠난 여행은 정봉사의 눈을 띄워주었다. 그 뒤로도 여행이라하면 어렵게 낸 휴가기간에 군휴양시설로 다녀오는 정도였지만, 전 처럼 피곤한 일, 낭비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여행이 본격적으로 좋아진건(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싫지 않아진건) 15년 군생활 종지부를 찍고 비교적 시간의 자유가 생기면서 부터였다. 연애시절 첫 휴가 때도, 갓난 아들을 장모님께 맡기고라도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던 아내는 프로여행러(여행전문가)다. 내가 봐도 오지전문 기자나 해외 현지 가이드가 적성에 맞을 아내를 따라 난 짐만 들고 다니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나도 짐이었을지도. 돈을 아끼며 다닌 여행이라 주로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와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베트남, 싱가폴, 마카오, 말레이지아 등 가까운 아시아를 돌았다. 한정된 예산이기에 기본이 배낭여행이고, 어떤 때는 안락한 숙박을 포기해야 했고, 비행기는 늘 이코노미였지만, 아! 이게 여행이구나. 여행의 맛을 알아가고 있었다. 아내가 준비하고, 아내가 진행하는 여행의 꿀맛.


시즈오카.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지명. 잠깐 피규어에 빠졌던(내 탓임) 아들이 지상파 프로를 보다 발견한 도시.

일본이라면 대학 2학년 때 조정부 친선교류차 다녀온 간사이대학(스이타시, 지금 검색해봄), 토쿄, 교토가 전부였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가 취미로 모으는 피규어를 사러 시즈오카에 다녀온 모양이다. 둘이 다녀오라는 아내의 제안. 문제 없다고 큰소리 쳤지만, 좀 쫄렸다. 일단, 일본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할테고(사실 내가 더 못함), 대도시가 아닌거 같아 교통편도 제한될테고... 초등생 시절 처음으로 버스타고 심부름 갔던 흑역사도 문득 떠올랐다. 호기롭게 버스를 타고 초행이니 용기를 내서 안내원형에게 어디에서 내려야 하니 알려달라고 당부까지 해두고 하차문 바로 뒷칸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달렸다. 이렇게 멀었나?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중 상당수가 내렸고, 하늘도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빈자리가 늘어나자 꼬마가 눈에 들어온 형님은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 간다고 했지?' 아무리 초행이지만 예정시간보다 길어지면 당연히 다시 물어야 했지만, 난 키작은 꼬마아이가 아닌 내성적인 꼬마아이였다. 어련히 안알려줄까 기다렸는데, 형님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쌍방과실. 형님의 제안은 지금 내려서 거슬러 올라가는거 보다 얼마 안남은 종점까지 가서 추가 요금 없이 돌아가다 내리라는 거였다. 그렇게 말로만 듣던 강경 종점을 돌아온 첫 여행.(당시 난 전라북도 이리에 살고 있었다. 지금의 익산) 미션을 수행했었는지는 기억에 없고, 어둑해져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때문에 엄마가 애가 닳았던 느낌만 남았다. 아내는 길치에 여행치인 날 위해 시간대별로 교통편과 숙박시설을 연계해서 예매해 주었고, 난 엄마, 아니 아내가 시키는대로 아들과 함께 비행기를 탔다. 피규어 담아올 작은 캐리어는 아들이 끌고. 장식장의 피규어들을 볼 때면 비 내리던 날 아들과 함께 밥먹던 노포, 빈 캐리어를 끌고 지났던 울퉁불퉁 했던 골목들, 그리고 마치 천국에 온 듯 신났던 전자상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즈오카공항 대기실에서 커다란 창을 통해 바라본 새하얀 후지산이 창에 어른거린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하고 여행다운 여행으로 남았다.

펜데믹이 지속되고 일이 없어지니(일을 구하고도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서) 여행은 사치가 되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보자던 다짐도, 내가 사는 청주도 못 가본 곳이 많으니 구석구석 돌아보자는 각오도 머릿속에서 반짝이다 쉽게 사그라들었다. 여행은 무슨... 가끔 휴대폰에 올라오는 지난 사진들 속에서 남해의 햇살을, 푸

꾸옥의 바다를, 기내식을, 커다란 배낭을 볼 때마다 여물처럼 씹어 삼킨다. 버틸 힘이 된다. 꿈이 된다.

얼마 전 전주 - 광주 - 담양으로 이어진 2박 3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다행히 내가 시간 낼 수 있었고, 아들 수시 실기가 끝나는 시기여서 아내가 계획한 힐링여행. 여느때처럼 난 기사와 짐꾼. 옛날 여관 느낌이 나는 모텔도, 가성비 높은 골목 맛집도, 비싸지만 어때 하며 질러버린 초대형 맛집도, 장거리 운전도 다 좋았다. 삶이 여행이라 말하지만, 여행하면 살고 싶다. 여행이 삶이고 싶다. 다시 왕래를 시작한 SNS에 해외 여행이 잦은 초등동창의 여행 사진이 또 올라왔다. 급이 다른 여행지, 스케일이 다른 여행이라 부러워하려다 참는다. 여행의 급은 내가 만드는 걸 또 잊을뻔 했다. 각자의 여행, 모두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살짝 착해진 마음으로 부러워해 본다. 나도 또 여행 가야지.


아들 정시가 끝나면 하얼빈에 가기로 약속했었다. 시즈오카 2탄! 그냥 객기였다. 어떻게든 시간 내고, 어떻게든 자금 마련해서 우리가 존경하는 안장군님(안중근 의사)의 흔적을 더듬고, 오리지널 꿔바로우를 먹고 오자고. 대출 상환일이 다가오는데 텅빈 통장처럼 머리속이 하얘지지만 일단 계획을 세워보기로 한다. 여의치 않으면 내년에라도, 후년에라도, 아니 좀 더 먼 미래가 될지 몰라도 꼭 다녀올거다.


다시 내 삶의 한 편으로 남을 하얼빈! 산티아고 순례길! 기다려라!! (기다려줘~ 제바알~)


첫 문장의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돈 낭비, 시간 낭비'였다. 쓰다보니 결국 질문 낭비였네.

푸른 배낭에 언덕을 구겨 넣어야 한데도, 가고싶다. 가야겠다. 어제도, 오늘도 난 여행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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