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 #일그남 #절필 #집필
그리다(동사)
1. 연필, 붓 따위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와 닮게 선이나 색으로 나타내다.
2. 생각, 현상 따위를 말이나 글, 음악 등으로 나타내다.
3. 어떤 모양을 일정하게 나타내거나 어떤 표정을 짓다.
...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다.
그림(명사)
1.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
2.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냥 그리세요, 잘 그리려고 하지 마시고 매일 그리세요."
지금은 기억에서도 지워진 경기도 어느 사찰 선방에서 만난 'Dream painter'가 돌아가려 일어서던 나에게 던진 제안은 화두처럼 전해졌다.
솔직히 뒷부분의 ‘매일 그리세요’는 내 기억의 왜곡일 수 있다. 그.냥.그.리.세.요.
그림 그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잘 그리는 일이 어려운 거다. 흔히 말하는 똥손들은 그림은 어렵다고들 한다. 그때의 나도,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렇다.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행위가 아니다. 잘 그리려니 어려운 거다. ‘그림’의 정의에 ‘똑같이’ 라거나 ‘잘’이라는 수식어는 없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잘’ 그려지지 않은 그림은 ‘그림’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게 무슨 그림이야’라는 물음은 ‘무엇을 그린 거야?’, ‘어떤 의미를 담은 거야?’ 일 수도 있지만, 대게 ‘이건 그림도 아니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는 나도 그리겠다.’ 아이러니다. 분명 그릴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리지 않는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가 그렇다.
어릴 적 난 그림 잘 그리는 아이였다. 8절 갱지에 신문 네 컷 만화를 연필이나 색연필로 따라 그리곤 했다. 다행히도 엄마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그럴듯한 그림에 늘 칭찬이 따랐다. 그래서 그림을 좋아했던 게다. 난 잘 못하는 건 하기 싫어하는, 주저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아이였다.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잘한다는 소릴 듣고 싶었다.(그래서 자전거도 겨우 탈 수 있었다. 지금은 이것마저 잘한다.ㅋ) 초등학생(국민학생) 때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서 자잘한 상을 받았고, 잠시 다닌 미술학원에서도 또래는 크레파스를 잡을 때 원장님께서 수채화 붓을 쥐어주셨다.(절친 녀석이 원장님께 따지 듯 물었던 기억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접었다. 그림 같은 소리. 예술대를 졸업하고 입시미술학원 원장을 하는 친구가 고1 때, 입시미술 준비 같이 해보자고 권했던 게 그림에 관한 마지막 기억이다. 가끔 무언가 그리고 싶었지만 잘 그려지지 않았고, 난 잘 그려야만 했으니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Dream Painter'라는 분을 알게 되었고, 궁금한 맘에 먼 길을 찾아가 그림에 대한 그리움 하나만으로 직업을 바꾸고 행복한 모습을 목격했다. 그분의 인생역정을 듣고 작별인사 끝머리에 '저도 한 때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었는데, 이제 엄두도 안 나네요'는 답이나 위안의 말을 듣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냥 인사말의 마무리 부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무엇에 홀린 듯 문구점에 들러 빨간색 겉표지의 손바닥 만한 무지노트 한 권을 샀다. 그날 밤에 연필꽂이에 있던 볼펜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림일기. 그날의 인상을 한 장의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 그렇게 리츄얼처럼 5년이라는 세월이 쌓이자 근자감이 차올랐다. 책 쓰기 특강을 듣고, 코칭을 받으며 언감생심 출판이라는 꿈을 조금 당겨보려는 욕심이 생겼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나간 그림들을 추리고 그날을 반추하며 짧은 글을 덧붙여 투고를 하고, 뼈 때리는 답을 받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책 한 권이 나왔다. '일기 그리는 남자의 소소한 일상(벗나래)' 내 최초 기획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건 난 작가가 되었고, 책은 금세 패스트셀러가 되었다.(bestseller? 아니죠~ pastseller! 맞습니다~, 아이고 옛날사람) 그림책(?)을 출간하면서 가장 큰 장벽은 지면의 그림을 책으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출판사 대표의 말을 빌자면, 계약금을 못 받고 추가적인 비용을 더해야 했던 이유였다. 고가의 장비가 필요하다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태블릿에 앱을 받아서 그리기 시작했다. 디지털작업이 좋은 또 하나는 앱 기능을 활용해 사진을 바탕에 깔고 본을 뜰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업작가가 아니니 그림 그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했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리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그림일기의 주제는 다양했다. 시사에 관심이 있어서 정치, 사회 관련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SNS에 공유하면서 다시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어느 날 신문사에 근무하는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혼자보기 아까운데 자기네 인터넷신문에 연재하면 어떻겠냐고. 고료를 줄 형편은 안되지만 포털사이트에 올려 관리해 주겠다고. 어차피 썩을, 아니 나와 주변 몇몇만 보고 말 그림,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일 그 남'이라는 필명(?)으로 만평 연재를 시작했다. 몇 년 동안.
절필. 정권이 바뀌고 비판적인 내 그림에 신문사 윗분들께서 불편함을 느끼셨나 보다. 친구에게서 정치 관련 내용은 좀 지양했으면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인구문제 관련 그림을 마지막으로 연재도 접었다. 마침(?) 내 일상에도 실직이라는 큰 변화가 생겼고 이런저런 일을 해보느라 시간도, 체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번 '그림 같은 소리'는 사라졌다. 화구 도매 업체에 근무하는 후배가 책을 선물하자 보내준 스케치북, 마카, 물감, 색연필들은 아무 죄 없이 옷장으로 유배되었다.
아들이 전공으로 미술을 택했다. 2년 동안 열심히 그렸고, 지금 이 순간도 학원에서 그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그려야 할 거다. 그림에 진심인 녀석 덕에 잊고 있던 로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길을 걷다가, 카페에 앉아 있다가, 덜컹거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작은 스케치북을 꺼내 펜으로 쓱쓱 일상을 담고 싶던. 만나는 사람과 헤어질 때 '선물이에요'하며 캐리커처(caricature) 한 장 건네고 싶은. 진공의 시간 동안 M사(피부가 떠오르는 유명한 회사)의 노란색 백팩을 샀고, 생일선물로 아내에게 스케치북을 받았다.(사달라고 졸랐다) 준비가 되었는데, 준비가 안되었다. 오랜만에 스케치북에 펜을 댈 자신이 없다. 급기야 스케치 밑그림이 인쇄된 책을 당근을 통해 샀다. 따라 그리기부터 다시.
우울함에 놓쳐버린 grim들.
싱그러운 일상을, 꿈을, 소중한 사람을 green다.
주절거리는 중에도 계속 ‘그리다’의 정의에 떠 억 하니 똬리를 튼, ‘닮게’라는 단어가 계속 맘에 걸렸다. ‘닮음’의 정도를 꼭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필요는 없지 않나? 일단 그리고 우겨볼 샘이다.
난 다시 그림을 그린다. 매일. 그냥. 조금 뻔뻔하게. 그림 같은 내일을 꿈꾸며...
P.S.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은 눈과 마음으로 그려야 합니다. 교만한 붓으로 그린 그림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프랑스, 인상파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