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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쓰는겨

20250220/목/맑음

by 정썰
#쓰는_것들

수에 약한 편이다. 주산이 2단이고, 통계학을 전공했다. 수에 약한 편이다.

약하다고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얼마 전 읽은 수에 관한 글.


‘많다’라는 표현으로 ‘억(億)’이라는 수(數)를 쓴다. ‘억수(億數)’란 말은 거기서 나왔다. 억보다 훨씬 더 큰 수가 많다. 억의 만(萬) 배는 조(兆), 조의 만 배는 경(京)이다. 경의 만 배가 해(垓), 해의 만 배가 자(秭), 자의 만 배가 양(壤)이다. 숫자는 계속됐다. 양의 만 배가 구(溝), 구의 만 배는 간(澗), 간의 만 배는 정(正), 정의 만 배는 재(載), 재의 만 배는 극(極)이다...(중략)... 불가(佛家)에서는 극의 억 배를 항하사(恒河沙), 항하사의 억 배를 아승기(阿僧祈), 아승기의 억 배를 나유타(那由他), 나유타의 억 배가 불가사의(不可思議)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치기 어려운 신비의 수다. 이 불가사의의 억 배쯤 되는 수가 무량수(無量數)다. 아버지는 “‘잘’은 어느 정도 칭찬인지 아느냐?”며 바로 “억은 0이 8개지만, 잘은 40개다. 신의 세계에서나 쓰는 숫자다”라고 했다. ‘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잘’은 일이 빈틈없이 이루어진 모양새를 나타내며 ‘잘하다’란 의미로 굳었다. “‘잘하다’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잘하려고만 하면 끝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시작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 줬다.


잘하는 것의 어려움, 시작의 어려움에 대해 필자의 아버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라고.


오전에 읽은 문화 에디터 고두현 님의 글도 새삼 인상 깊다.

'제한된 시간의 압박은 우리의 창의력을 자극한다. 데드라인은 집중력을 극대화한다. 심리적인 동기부여, 자기 효능감이 커지면 몰입도가 높아진다. 생리적으로 코르티솔과 도파민이 증가하면 집중력과 에너지가 급상승한다.'


잘 쓰려는 마음은 애당초 내려놓았다. 재미는 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무얼 쓸까...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걱정 아닌 걱정을 한다. 오늘처럼 밋밋한 하루를 살고 나면 퇴근 즈음에 슬~ 불안해진다. 주워 읽은 두 편의 글로 급하게 막아 본다.


오늘도 그냥 쓰자. 자정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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