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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11화

#봉사

#푸르네오 #네팔 #메이크_어_위시 #짜장 #연탄 #어린이_경제교실

by 정썰

'봉사자님, 안녕하세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답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앞으로 봉사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활동재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나 봉사자였지.


잊지 않고 메일을 보내주는 봉사단체. 2년여 만에 열어본 편지함의 '안 읽음' 칸에 적힌 '999+'(뭐야 은하철도도 아니고) 그 숫자가 괜히 숨차서 하루 날 잡아 분리배출을 했다. 스팸함과 휴지통에 2년 동안 쌓인 쓰레기들을 꾹꾹 밟아 넣고 남겨 둔 발신자 중 하나, '메이크 어 위시 코리아'.


한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 때론 계획부터, 때론 단순 참가자로 꽤 다양한 활동들을.

대학생들의 멘토 역할로 '푸르네오'라는 팀을 꾸려 지진이 난 네팔로 날아가서 새로 화장실을 만들고, 외딴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물품도 기증했다. 겨울이면 관련 단체들과 협력하여 독거노인분들께 무료 급식 짜장면을 만들어 직접 배달도 하고, 달동네에 연탄을 날라 쟁여두기도 했다. 초등생 방과 후 교실이나 시설을 찾아 게임을 통해 경제를 알리기도 했다. 비교적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업무와 사회봉사가 활성화되었던 회사의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누군가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일은 내가 한다'는 강박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


언젠가 다시 네팔로 단체 여행 가자고 약속한 푸르네오 친구들하고는 단톡방에서 가끔 안부 전하며 긴 여운을 붙잡고 있지만, 무료급식, 연탄배달 등은 대부분 1~2회 성으로 끝이 났다. 단, 메이크어 위시에서 진행되는 정기봉사단 활동은 꾸준히 지속되었다. 안타깝게도 한 가지 소원을 붙들고 병마와 싸우는 환아들이 많았고, 다행히도 메이크 어 위시라는 단체를 알고 위시데이(wish day) 신청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활동을 끊일 수 없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만난 첫 위시키드(wish kid, 미국에서 시작되어 영문 명칭이 많다.)는 바리스타를 꿈꾸는 고등학생이었고, 그 뒤로 레고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초등생, 박보검 님을 만나고 싶어 한 활발한 남자아이, 제빵사를 꿈꾸던 여자아이를 위해 4~5명이 팀을 이루어 아이와 만나 소원을 알아내고, 깜짝 파티와 선물을 준비해서 마지막 위시데이까지 진행했다. 컴퓨터가 필요한 청주 사는 남자아이의 위시데이는 지역적 특성상 아내의 도움을 받아 나 혼자 기획하고, 준비하고,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팬데믹과 함께 찾아온 내 일신의 변화도 지긋지긋한 코로나처럼 오랫동안 날 병들게 했고, 난 봉사자에서 봉사를 받아야 하는 (정신적, 때론 육체적) 환자로 살았다.


봉사(奉仕)라는 게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쓰는 것이라니, 국가에 봉사한 (내 청춘과 머리숱을 바친) 군생활 15년까지 더하면 삶의 절반을 봉사자로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결국 그 바닥이 드러나면서 과연 순도 100%의 봉사였나 싶은 자아성찰로 주저앉았다가 '내 처지에 무슨'이라는 무게감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시간도 돈도 없었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은 진린가 보다.


메일을 정리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좀처럼 숫자가 줄지 않았다. 읽어보고 지워야지 하며 쌓아둔 메일을 스킵하며 지우는 단순반복 중 '2023 위시고사(Wish Test)'가 있길래 풀기 시작했다. 힌트를 들춰보면서 잊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아... 진부한 표현) 스쳤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는데 추첨해서 커피도 준단다. 그런데 커피보다 더 반가운 문자를 받은 거다. 낙첨했으면 그만인 것을, 친절하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 고마움에 답장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나눠 주시고... 다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내 전화번호가 아직 남아있는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래서 난 다시 '메이크어 위시 코리아'에게 꽃이 되어야겠다. 아니지, 소원 성취의 기운으로 병마와 싸워 이길 꽃들을 찾아 나는 나비가 되어야겠다.


흔히들 말한다. 봉사를 통해 행복해지는 건 봉사자 자신이라고 돌아보니 그렇다. 때론 시간이 아쉬웠고, 피곤하고 귀찮은 적도 있었지만, 나를 위한 시간들이었다. 항산에 힘쓰자. 잃어버린 마음을 찾자. 항심하자. 남은 시간, 다시 봉사자로 살자. 우선 두고두고 미안할 아내와 아들부터, 집에서 부터 시작하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하는 잘못된 크리스천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자. 생활 봉사자? 그게 나의 위시(wis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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