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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다시 10화

#강도창

#모범 #꼴통 #만년경사

by 정썰

남/45세/인천서부경찰서 강력 2팀 형사(경사)


다시 그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꽤 오래전. 어느 저녁. 뭐 좀 볼 게 있나 뒤적거리던 OTT 목록에서 찾아낸 드라마. 시즌 2.

'이거 요즘 나온 드라마야?‘

'그거 예전에 끝난 거야. 난 시즌1이 더 재밌던데…' 드라마여왕의 추천작이라니,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그런데 아무리 넘겨봐도 ‘모범형사 2’ 뿐이다. 어쩔 수 있나.

오랜만의 드라마 정주행.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기’ (아… 이 숨길 수 없는 이놈의 자기애) 이후 밤의 끝을 부여잡고, 벽에 걸린 시간을 흘깃거리다 아쉬움에 잠을 청한 게 얼마만인가.

열여섯 편을 며칠 만에 정신없이 몰아봤다. 그리고, 시즌1이 궁금해졌다. 강도창의 지난 삶이 궁금했다. 그는 왜 18년 차 경사인지, 그 나이에 왜 여동생이랑 한 집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싱글인 그에게 왜 딸이 생겼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혹시나 하고 가끔 들러봤지만 만날 수 없었다.


주중에 이틀 쉬는 일을 하게 되면서 그중 하루는 몸과 맘의 여유가 생겼다. 아점을 대충 챙겨 먹고 영화나 한 편 보자고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커다란 영문 대문자가 웅장하게 등장 후 사라지고, 펼쳐진 메뉴. 어라? 아싸! 강도창이닷!! 2가 빠진 강도창!!! 이틀 동안 폭풍 정주행. 언제 또 사라질지 몰라, 잔치집에서 폭식하는 거지처럼.


꼴통. 그의 사고가, 행동이, 말투가, 급기야 그의 주변인들이 마저. 사전적 의미인 ‘머리가 나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보다는 ‘고집이 세서 남의 말은 씨도 안 먹혀서 골치께나 썩이게 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맞는 사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 가능한, 아니 현실에도 한 명쯤은 있었으면 하는 사람. 그래서 결국 모범형사인 사람.


난, 같은 제복을 입고 살았던 난. 꼴통이었나, 모범이었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존재감 없는 군인이었나?

잘 길러진 모범생으로 임관해서 뒤늦게 깨달아버린 어설픈 꼴통. 이렇게 군복을 벗고 나올 거였으면, 그때, 좀 더 대들걸, 좀 더 따지고 들걸, 좀 더 과감할걸, 가끔 후회하는 미완의 꼴통.


남은 삶도 강도창처럼 살 순 없지만, 그런 그릇이 못되지만 그래도 자기 잘못 앞에 정직할 줄 알고, 가능한 책임질 수 있기를. 지금까지도 너무 이기적이고, 이것저것 재고 눈치 보고 살지만, 조금 더 내려놓고, 인정하고 무뎌질 수 있기를.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또 삶 속에서 무뎌질 때쯤 시즌3으로 날 다시 찾아와 주길. 그리고 소주 한 잔 나눌 수 있길. 그때는 꼭 본방사수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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