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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특며들기

적응되는 것들과 적응 안 되는 것들 1

by 정썰

어리바리 첫 훈련을 마치고 득달같이 달려든 50km 야간행군. 지금은 민간에 개방된 청남대 외곽 경비 임무가 있는 부대였다. 개인군장을 꾸려 저녁에 출발해서 동트기 직전에 막사에 도착했다. 흔히 말하는 FM 군장을 메고(특전사 기본군장은 매우 무겁다) 밤새 걸었다. 소변도 참아가며. 소변기에 빨간 소변이 흘렀다. 삼십 평생 처음으로 목격한 혈뇨였다. 두려움이 뒤통수를 세차게 갈겼다. 아뜩했다. 이제 시작인데,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마음도, 몸도.

6개월. 팀원들과 보조를 맞춰 선두에서 걷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 6개월 전에 수영강습과 달리기가 있었고, 수개월동안의 기본강하훈련을 마친 후였다. 그리고 6개월 동안 거의 매일 아침에 나머지 공부하듯 달렸다. 선행학습이 아닌 나머지 공부였다. 특전사는 나약한 팀장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았다. 행군 중 쉬어가자는 팀장의 귀에는 공공연하게 욕설이 튕겼고, 급기야 첫 천리행군 때 몇 구간은 휴식시간을 위해 팀을 선임담당관에 맡겨 먼저 보내야 했다. 대대 대표팀으로 선발되어 나간 작전에서도 작전지역 고지에서 길을 잃어 결국 체력 고갈로 패잔병처럼 고개를 떨구고 돌아와야 했다. 신체적으로 힘듦은 물론이고, 정신적 모멸감에 죽고 싶은 마음은 때론 다짐이었고, 때론 진심이었다 그래도 체력은 적응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매일 같이 산악구보에 빠지지 않으려 했고, 틈틈이 몸을 만들어서 팀을 이끌고 작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팀원들과의 갈등도 사라졌다.(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천리행군은 비교적 여유롭게 마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국가에 빚을 진 샘이다. 어쩌면 남들이 특전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선발을 거둬달라고 할 때 내가 먼저 그랬어야 했다. 대한민국 장교로서의 신념과 자존심은 어쩌면 자기 이해가 부족한 오만, 혹은 교만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체력적 구멍이 메꿔지니 특전사 팀장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이라는 세월을 보내 일차 팀장의 기한이 다 할 때쯤 적응 안 되는 것들과 다시 부딪쳐야 했다. 출신과 제도, 그리고 불합리한 문화들로 인한 마찰은 마음을 단련을 요구해 왔다. 어쩌면 체력적 도전보다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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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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