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도전받는 리더십!

by 정썰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는 검은 베레. 안되면 되게 하는 특전부대 용사! 내가? 내가.

증평에 위치한 흑표부대로 발령받았다. 물론 호락호락 그냥 받아줄 리 없다. 혹독한 기본공수훈련을 받았다.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 부사관들과 함께 입소되어 더 힘들었다. 난생처음 피로골절이라는 걸 경험했다. 주말에 외박을 나오면 병원에서 진료받고 신음처럼 새어 나는 파스냄새로 귀한 주말을 소비하곤 했다. 덕분에 단단해졌다. 그래도 살짝 쫄아서 도착한 부대는 텅 비어 있었다. 전 주에 제주도 전술훈련을 떠난 부대원들을 뒤쫓아 제주도로 추가침투라는 걸 했다. 나를 포함한 총 두 명의 신임 팀장 때문에 남았던 군수담당관이 챙겨준 장비를 갖추고 셋이서 CN-235라는 군용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추가침투라는 폼나는 이름이지만 낙하산을 메고 떨어지진 않았다. 비행기와 함께 활주로로. 다행이었다.


제주도 훈련장에서 팀원 열 명을 세우고 취임식을 했다. 중대장을 꿈꾸던 고군반 장교에겐 초라하기 그지없는 풍경...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호락호락 날 받아줄 리 없다.


조촐하고 초라하게 취임식을 마치고 팀 내 고참 중사에게 정중하게 끌려 바닷가 바위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요는 이랬다. '저까지는 하대하셔도 되는데 저희 선임담당관(당시 팀 내 최고참 상사)께는 정중하게 대해 주십시오.' 흠, 이건 뭐지?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부사관 중심의 부대라 팀장(대위)과 선임담당관(상사)을 동급으로 보는구나, 그리고 전임자가 선임담당관에게도 하대했구나. 선임담당관을 존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건 그 선임담당관의 됨됨이에 따라 내가 정할 일인데 중사의 태도에 신선함 보다는 살짝 불쾌함을 느낀 게 사실이다. (물론 나이가 같은 선임담당관과 이 중사와는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내 생각인가?) 텃새 아닌 텃새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전투체육으로 축구를 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울퉁불퉁한 돌 섞인 땅에서 전투화를 신고 달렸다. 패스를 패스당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파닥거리다 발목을 접질려 넘어졌다.

경기는 중단되고 의무대 위생병이 뛰어 들어와서 발목을 살피는 와중에 부대원들은 내 주위를 빙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기는 개뿔. 아무 일 없다는 듯 경기는 진행되었고 난 내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피해 깽깽이로 경기장 라인 밖으로 혼자 뛰어나왔다. 생경한 대우가 서운했고, 부어오를 발목은 아팠다. 곧이어 식사시간. 난 식당까지 걸어갈 상태가 아니었다. 막내 하사가 배식판에 밥과 반찬을 담아다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선임담당관이 팀장님 챙겨드리라고 해서 날 챙겨준 의무부사관 박하사는 그 선행 후 인접 팀 의무담당 선배들에게 끌려가 린치를 당했다고. ‘네가 팀장 시다바리야? 그거 하려고 특전사 왔어?’ 그가 중사가 되고 항공준사관에 관심을 보일 때 난 물심양면으로 그 친구를 도와 헬기조종사 박준위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시험은 계속되었다. 저녁에 간식이 나온다. 증식이라고 한다. 주로 우유와 빵이 나왔다. 난 빵돌이. 마다할 리 없다. 하지만 며칠간 난 빵을 입에 대지 않았다. 순서가 문제였는데 빵과 우유가 든 상자를 든 하사 둘은 선임담당관, 선임중사를 거쳐 나에게 왔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넙죽 받을 수도 상자를 엎고 애꿎은 하사에게 면박을 줄 수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모면해야 했다. ‘장하사 하나 더 먹어, 나 빵, 우유 안 좋아해.’ 나흘째였나? 배급하는 하사들을 선임담당관이 나무라며 ‘팀장님 먼저 드려야지’ 했다. 나름 잘 넘어갔다. 그 후로 같은 식구로 인정받을 때까지 수많은 시험이 있었고, 리더의 품격을 지키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건 만만치 않았다. 팀장이라는 이름은 부임과 동시에 내게 던져졌지만, 온전히 내 것이 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가장 마지막까지 걸림돌이 된 건 다름 아닌 체력이었다. 젠장 육각형인간이 되어야 하는 거였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13화위기의 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