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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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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02. 2023

나비의 장례





새까만 숯덩이 위에 얹힌 나뭇가지.

때처럼 보이는 그을림이 시간의 단위를 말해주는 듯하다

언제나 연약했던 사람과, 마음, 상실,

그리고 침전물들이

취기 어린 목소리로 축축하게 불려져 왔다는 사실이

꽤 그럴듯하다.




웬 나비가 달려들어 나뭇가지 위에 발을 내딛는다

날개는 보드랍고 여려

열기에 쉽게 망가지고 말 것이다

무엇을 쫓아 여기까지 왔는지

의아해할 새도 없이

타들어가 사라져 버리는

거짓말 같았던 존재




나뭇가지가 딱-하고 소리를 내면

그 열기에 데어 뺨이 수채화처럼 붉게 물들어간다

과연 아름답지 않은가.

다 타들어간 나뭇가지가 남긴

불꽃들이 추는 춤이.

영원한 안식은 새까만 숯덩이와

나뭇가지의 그을음에 존재한다

그러니 얼른 함께 춤을 춘다.




그렇게 나비의 장례를 치르고선

손에 묻은 검댕을 바지에 쓱 닦는다.

아마 아무것도 아닌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채로 존재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더 이상 앓아낼 수는 없으리란 말을

잘근잘근 앓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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