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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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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r 30. 2023

검붉은 장미와 바람



언제 적 일어났던 것인지 모를 이야기다.

언제 적 추억했던 것인지 모를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갑자기 달아올라 뜨거워지는가 하면

쇠처럼 차게 식어가 멀찍이 지켜보기도 했던 그런 이야기.

밤이 되어 그을음이 세상에 덕지덕지 붙어있을 때

그때 핀 검붉은 장미 한 송이가

산들바람에 조금씩 흔들렸었다.

장미의 잎은 바람만큼이나 보드라워

둘은 금방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결이 같았기에.


하지만 장미의 줄기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곳에 달려있는 가시를 바람이 피해 갔기 때문이다.

외면당한 것들에 손 끝을 갖다 대면

장미 꽃잎만큼 검붉은 피가 동그랗게 맺힌다.

그렇게 밀어내는 가시에 다가간 그는 장미의 진실한 색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는 몇 명의 친구 혹은

색을 머금은 것들을 곁에 두고 있는가.

그것이 필경 중요하기나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곳을 떠돌기 위해

잡고 있는 끈 정도의 것 일뿐일까

알 수 없지만

자꾸 가시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은

아마 바람이 나를 피해 가는 것이

나름대로 속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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