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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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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May 26. 2023

주어진 운명




숨겨진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삭아버려

손에 쥐니 퍼석하게 바스러진다

그리고 이름 모를 바람에 조금씩 쓸려나간다

옅어진다

여기, 나는 그 이야기를 한올씩 모아

주워 담고 있다  



만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나열된 글자들이 이글거리는

이 끄적임에도 이름을  붙여본다

그러니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할 수 있겠다   



그 이야기 속에서

영혼과 끝을 구분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걸 운명이라 칭한다

보통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포처럼 거치르며

갓난아이의 피부처럼 보드랍고

또한 밤바다를 보는 것처럼

가슴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꽤나 새침한 하루 속에서

겨우 무엇을 건져낼 수 있을까

무엇을 건져내야만 하는 걸까



옅게나마 들려오는 깊은 노래가

피부에 닿아오면

나는 생각하는 거다

결국 그 노래를 듣지 않을 수는 없을 거라고

그러니 나는 계속 종이 위를 적실 거라고

마치 그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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