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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빛의 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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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Jun 01. 2023

고래의 등


어디에선가 들려온다

폐허가 되어버린

늦어버린 초침 끝이

부식되어 가는 소리가


지글거리는 것도 같고

거품이 사그라드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걸 기억해 내기에는

많은, 아주 많은 날들이 필요했다

터진 물집의 액이

핏빛으로 차올라

목말랐던 날들 또한


그렇게 시간이 부식되는 동안

그렇게 그 자리에 서있던 나는

그렇게 자꾸 돌아만 봤다


물집을 터트린 곳이

다 아물어 버리기 전에

기억해내야만 했다

그 소리를, 그 촉감을 그리고 그 냄새를


그러기 위해

고래의 등에서

하염없는 푸른색을 바라보다

미끈거리는 곳들을 더듬어 본다

차갑고 축축한 피부에 얼굴을 맞댄 채

누워서 태양을 바라본다

내 시계는 여전하다


흔들리는 초침을 보며

그렇게 잠겨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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