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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큐라의 성

루마니아의 브란

by 카렌

브란 성은 드라큘라 성으로 알려진 곳이다.


관에서 일어나 날카로운 이빨로 예쁜 여자의 목을 무는 드라큘라 백작이 이 성에서 잠시 살았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브람 스토커가 그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만든 것이다.

그는 원래 흡혈귀의 이미지보다는 오스만튀르크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명은 블라드 3세. 블라드 체페슈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은 그의 독특한 고문 방법 때문이었다. 그는 포로로 잡힌 적을 순순히 죽게 하지 않았다. 항문에 꼬챙이를 꽂아 그것을 입으로 꺼냈다. 체페슈란 꼬챙이란 뜻이다. 이 소문을 듣게 된 적들은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그 공포가 당시의 루마니아 국민들에게는 좋은 것이었다.


브란 성에 도착한 우리는 입구에서부터 망설이고 있었다.


입장료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30 레이. 무려 9000원이나 했다. 동유럽의 최빈국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입장료였다.


- 별 거 있을까? 난 안 들어가도 좋아.

그렇게 제이가 말하자 나도 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성이란 그저 성일뿐이지 별스런 성이 또 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브란 성에 오르기로 했다. 입구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차를 한 잔 마신 후의 결정이었다. 젖소로 만든 것으로 판단되는 질긴 스테이크로 배를 채웠지만 의욕이 돋았다.


돌산을 오르고 돌계단을 올라 블라드 3세의 초상화가 그려진 방에 도착했다.


남들처럼 그 초상화를 사이에 두고 사진도 찍었다. 그는 드라큘라라는 별명을 좋아했다. 흡혈귀의 대명사로 알려진 그 단어는 사실 용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용의 기사단으로 활동했던 그의 아버지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브람 스토커가 드라큘라를 발표했을 때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영웅을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에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브람 스토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늘어서 조금 살기가 나아졌다. 호텔이 들어섰고 마을 길이 생겼으며 기념품과 토산품을 팔 장이 열렸다. 우리가 방문한 날엔 사람들이 가득해서 식당에서 자리를 잡기도 브란 성을 쉬엄쉬엄 여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우리는 성을 조금 급하게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빙글 빙글 올라가면서 기사들의 무기와 갑옷이 전시된 방을 보았다. 비밀의 방으로 통할 것 같은 가파른 계단도 허리 숙여 지났다. 왕의 침실과 손님 접대방, 회의실 등은 심플한 느낌이었다. 페치카가 있었지만 겨울을 어떻게 보내었을까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도 군데군데 바깥 풍경이 들어오는 창이 좋았다. 자연 감상을 위한 창이 아니라 적의 침입을 살피고 농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였다. 기특하게도 창 옆에는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턱이 있었다.


우리는 옥상 테라스에서 잠시 쉬었다.

- 성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서 사는 기분은 어떨까?


내가 물으니 제이가 대답했다.


- 내가 저들 때문에 잘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조금 착한 사람이라면 저들에게 내가 더 큰 은혜를 베풀어야지 그 정도는 생각했을 테고.


제이의 말을 듣고 나자 진정 무언가를 생각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는 것이라는 한 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성주는 성주가 보는 대로 생각했을 것이고 성 아래 사람들은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대로 생각하고 살았을 것이다.


잠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야 하는 나는 어느 쪽의 풍경을 좋아할까.


성 아래 살면서 성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동경하며 살아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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