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강의 조선인들

러시아 하바롭스크

by 카렌

아무르 강은 검은 빛이다.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고 부른다. 강을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러시아와 중국은 다투었다. 이웃사촌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만 이웃에 있기 때문에 원수가 되기도 쉽다. 송화강이 흘러서 아무르강과 만나는 그 부근은 만주족의 고향이었다. 러시아가 그 지역을 넘봤고 청나라는 계속 패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조선에게 포수를 보내라고 했다. 그때 조선의 왕은 효종이었다. 효종은 인조의 아들이다. 인조는 청나라 황제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임금이었다. 효종은 북벌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치욕을 갚으리라. 그러 마음을 품고 살았다. 군사력 강화에 관심이 많았고 우연히 조선에 표류한 하멜의 조언을 받으면서 포수를 양성한다. 그러니까 조선 포수의 목표물은 청나라여야 했다. 하지만 그때 조선포수들은 청나라 장군의 지휘를 받으며 러시아와 싸워야 했다. 그러한 상황 때문에 우리나라 군대와 러시아군이 최초로 전투를 벌이게 된 그 사건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의 입에 한동안 오르내릴 수가 없었다.


그 사건을 ‘나선정벌’이라고 한다. 2차에 걸쳐 정벌이 이루어진다. ‘신유’는 2차 나선정벌(1658년)의 지휘관으로 아무르강에 왔다. 내가 알기로는 공식적으로 아무르강에 도착한 최초의 조선인이다. 그는 자신의 정벌 과정을 일기로 남겼다. ‘북정록’이라는 제목의 일기인데 진품 한권만이 남아 있다.


신유와 조선 포수들은 청나라 배를 타고 송화강을 따라 내려가다 어느 합류지점에서 물색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흑룡강물이었다. 검은 물을 따라 4킬로 정도 내려갔을 때 러시아 함대가 나타난다. 그들과 전투를 벌인다.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리켜 ‘대두인’이라고 불렀다. 머리가 크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포수들이 쓰고 다닌 큰 모자 때문이었다. 그들이 ‘대두인을 조심하라’라고 한 것은 1차 나선 정벌 당시 조선 포수들에게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포수들은 거의 백발백중의 스나이퍼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1차 정벌을 나가기 전 조선 포수와 청나라 포수들이 연습을 했는데 목표물을 두고 쏘는 훈련에서 조선 포수는 맞추지 못하는 이가 드물었고 청나라 포수들은 맞추는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흑룡강 전투에서 조선인 7명은 목숨을 잃는다. 불로 공격해서 러시아 배를 침몰시키려는 조선군에게 청나라 장수는 화공을 멈추게 한다. 러시아 배로 올라가 불을 끄게 한다. 조선군은 명령을 따르다. 불화살과 조총에 겁을 먹고 뱃속으로 들어갔던 러시아군이 나타나 총을 쏜다. 그때 그들은 전사한다. 청나라의 지휘관은 사이호달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치욕을 준 병자호란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가 그런 무모한 명령을 내린 것은 배가 가라앉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포획한 적선에서 총과 모피 등을 빼앗아 자기 배를 불린다.


사망한 조선 포수들은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신유는 사이호달에게 따지며 끝까지 버틴다. “조선의 풍습에 화장은 없소. 매장을 허락해주시오.” 끈질긴 설득 끝에 조선 포수들은 아무르강의 어느 언덕에 묻힌다. 신유는 그의 일기에 죽은 이들의 고향과 이름을 적어 남겼다. 그는 나머지 군대를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온다. 수명을 다한 다음 죽게 되었을 때 장례식장에서 그의 살아서 공적이 낭송된다. 그 공적에 나선정벌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국가적 원수를 국가가 도왔다는 것은 국가정책에 모순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검은 빛의 아무르 강은 우리의 역사와 전혀 무관한 강이 아니다. 남하하려던 러시아가 욕심을 버리고 아무르강 이북에 멈추었던 것은 우리 조선 포수들의 역할 때문이었다.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는 변함없이 아무르 강을 국경선으로 하고 있다.


흑룡강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대략 200km 강물이 흘러온 오면 바로 이곳 하바롭스크이다. 강물의 이름은 여전히 흑룡강이다. 그리고 또 아무르 강에 몸을 묻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 여기 있었다. ‘김 알렉산드라’ 바로 그녀다. 김 알렉산드라의 일생에 대해선 내가 앞서 짧게 기록한 바가 있다. 독립운동가였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볼세비키 당원이었고 전세계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하다가 반혁명군에 잡혀 총살 된 뒤 아무르강에 던져졌다. 그녀가 사형 집행을 당한 곳이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변이다. 지난 세월은 잊혀 졌고 그녀가 사형을 당한 곳에는 아무르강을 굽어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서 있다. 옛날(1918년) 이곳에서 김 알렉산드라는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열 세 걸음만 걷게 해주시오.” 그녀는 강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조선의 13도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탕’, ‘탕’. 그녀는 공산주의자였기에 오랫동안 남한에서는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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