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아침

러시아 하바롭스크

by 카렌

하바롭스크를 첫 번째 방문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카카두호스텔로 갔다.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여자는 제이와 나를 보더니 이런 제안을 했다. “돈을 조금 더 내면 두 사람만 쓸 수 있는 방이 있어요.” 우리는 각각 다른 도미토리룸을 예약했다. 인기가 있는 곳이어서인지 같은 방에 빈 두 개의 베드가 없었다. “돈은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는 열쇠 뭉치를 들고선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도미토리만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옆에 아파트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아파트였다. 검은 현관문은 감옥문 같았다. 엘리베이터는 좁았다. 열림, 닫힘 버튼은 없었고 층수를 누르자 급하게 문이 닫혔다. 그리고는 ‘징이잉’하고 올라갔다. 우리 방까지 들어가는데는 세 개의 열쇠가 필요했다. 아파트 현관문 열쇠, 집 현관문 열쇠, 방 열쇠. 나중에 보니 안에서 누가 문을 잠그면 집 현관문은 열쇠가 있어도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집 현관을 크게 두드려야 했다. 방은 두 개였고 부엌이 하나, 화장실이 하나, 샤워실이 하나였다. 하나의 방에는 중국인 커플이 묶고 있었다. 누가 묶었는지 담배 냄새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러시아 현지인들이 사는 아파트를 경험해보는 거라는 생각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에어컨을 켜고 잠깐 낮잠을 잔 다음 트램을 타고 어디선가 내려서 아무르 강으로 갔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해가 보이지 않았다. 구름 밖에서 해가 구름을 달구고 그 열기를 구름은 또 이 땅에 가두어 둔 것 같았다. 견디기 힘든 더위였다. 강에서 사람들은 수영을 하고, 배구를 하고, 낚시를 하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괴롭게 쭉 강을 따라 걸었다. 다시 피곤이 몰려왔다. 제이는 자주 쉬자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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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로 가는 줄 알고 탄 트램은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내려서 반대편의 트램을 탔다. 사람들은 친절했다. 길을 물으면 점잖고 낮은 목소리로 최선을 다해 이야기했다. 한 아주머니가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내게 뭐라고 했다. 아주머니의 말에서 나는 프럼, 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코리아라고 했다. 또 말을 하는데 네임, 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제이가 들고 있는 전 트램의 티켓을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한 말은 “돈 내야 해” 그런 말이었다. 그녀는 차장이었다.


아파트로 돌아와 나는 사온 것들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먼저 밥을 안치고 계란을 삶기 위해 솥을 두 개 씻었다. 아파트에는 좋아 보이는 식기가 없었다. 따로 차를 놓아 두지도 않았다. 도미토리의 부엌이 훨씬 좋은 것 같았다. 냉장고와 싱크대를 열어보았다. 냉장고는 비었고 싱크대 속에는 언제 사용했을지 모를 빵과 소스가 있었다. 칼도 숟가락도 없었다. 누군가 놓고 간 플라스틱 숟가락, 포크를 발견했다. 전기렌지도 내게는 문제였다. 어떻게 켜는지 부터가 어려웠고 오른쪽으로 돌려야 높은 온도인지 그 반대로 해야 그런지 알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뜨거워지는 판 위를 손으로 만져보다가 손에 물을 묻혀 그 위에 튕겨보았다.


밥은 몇 번 끓어올랐고 뚜껑을 열어 넘치는 것을 막았다. 밥은 그렇게 뚜껑을 여는 게 아닌데 걱정이 되었다. 뜸을 들이려면 온도를 낮추어야 되는데 ‘어느 방향으로 손잡이를 돌려야하지’ 또 다시 갈팡질팡.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어떤 온도에 오르면 판이 자연스럽게 스톱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계란은 소금이 없어서 짜증이 났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소금을 넣고 끓는 물에 20분. 그게 삶은 계란에 대해 내가 아는 정석이었다.


전기 렌지의 불을 끄고 오래도록 밥솥의 뚜껑을 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이 되어 삶은 계란의 물을 부어버리고 찬 물로 헹구고 오래 담가 두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결국 둘 다 괜찮은 음식이 되었다. 밑반찬으로 당근 김치와 콩이 들어간 부로콜리를 사왔다. 우리는 이정도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고급 레스토랑 보다 오히려 이런 쪽을 선호했다.


“여행자의 아침이라고 들어봤어?” 식탁에서 계란을 벗기며 내가 물었다. “아니. 그게 뭔데?” “먹는 거.”

러시아에는 ‘여행자의 아침’이라는 통조림이 있었다. 그런 통조림이 있었던 것을 보면 러시아에는 여행자들이 무척이나 많았던 것 같다. 가능한 일이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77배쯤 되는 나라이지만 인구는 1억 4000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5000만 정도 되는 것으로 볼 때 러시아 인구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도시에 몰려 살았다. 큰 도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군데군데 들어섰다. 도시간 이동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기차를 이용해 며칠씩 가야할 때가 많았다. 그때 필요한 것이 ‘여행자의 아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무척 맛이 없었나봐. 그래서 사람들이 사가지 않는데도 생산을 멈추지는 않았대.” “왜?”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는데 생산을 멈추면 그곳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어. 나중엔 하도 팔리지 않아서 다른 물건을 팔 때 서비스로 끼워 팔았대.”


다음 날 우리가 차린 ‘여행자의 아침’은 쌀죽과 햄, 삶은 계란과 사과였다. 괜찮은 아침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이의 아이디어였다. 어제 “남은 밥은 어떻게 할까?” 하고 물었더니 “쌀죽이지” 하고 대답했다. 솥에 물을 붓고 전기렌지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밥이 끓었다. 그리고 햄. 햄은 어제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햄을 요리할 팬과 오일이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제이가 마트에서 햄을 고를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버리게 될지도 모르는데” 하고 걱정을 했지만 말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결과까지도 함께 하는 것 그런 것이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런 기대도 없이 “햄은 어떻게 하지?”하고 물었다. 그런데 제이가 괜찮은 아이디어를 냈다. “뜨거운 물에 데치면 돼지.” “아” 나는 놀라움과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이런 게 기다림이 미학이구나.” 어제 제이가 그걸 고를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만족스럽게 ‘여행자의 아침’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곰을 좋아하는 것 같아. 너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곰 동상 봤지.”

“응, 해변 공원에도 있었고, 민박집 근처에도 있었어.”

“그래서 곰 이야기도 많은 것 같아.”

“아는 거 있어?”

“당연히 있지.”

“해봐.”

“남자가 여행을 하다가 숲속에서 곰을 만났어. 곰이 남자에게 물었지. ‘넌 뭐하는 놈이냐?’ 남자가 대답했어. ‘저는 여행자인데요.’ 그랬더니 곰이 이렇게 말했대. ‘여행자는 나고, 너는 여행자의 아침이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재미없지?”

“응.”

“근데 러시아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배꼽잡고 웃는대.”

“사람은 맛이 없다. 뭐 그런 이야기인가?”

“뭐, 그런 뜻도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여행자의 아침’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이야기는 소련 정부를 비꼬는 민담 같은 거였다고 하더라. 그게 그렇게 안 팔리는 데도 생산을 멈추지 않고 개선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정부에 대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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