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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세스쿠

루마니아의 부크레슈티

by 카렌

의회 궁전 앞에 도착했는데 안개로 건물을 볼 수 없었다.


부쿠레슈티에서는 이것 하나만 보겠다고 했는데 아쉬웠다.


길을 건너 가까이 다가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나의 제안을 제이는 거절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건너가 보아야 볼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게 제이의 생각이었다.


우리는 잠시 서서 짙은 안개만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 웅장한 건물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니 뭔가 묵직한 게 느껴졌다.


의회 궁전은 북한의 금수산태양 궁전을 본 뜬 것이다.


1971년 북한을 방문한 차우세스쿠는 그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곳에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다. 당시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비용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짓도록 명령한 것을 보면 그는 초대대통령이라기보다 루마니아의 마지막 왕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궁전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1989년 12월 혁명으로 몰락했다. 무리하게 궁전을 짓도록 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그가 몰락한 이유 중 하나가 친구를 잘못 사귀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그의 절친은 금수산태양 궁전의 주인이었다.


그를 사랑한 차우세스쿠는 아바타처럼 그의 흉내를 내려고 했다.


자신을 루마니아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유교적인 사회를 경험해보지 못한 루마니아 국민들에게 그런 세뇌는 오히려 반감을 샀다. 차우세스쿠의 아내 엘레나가 자신을 묶으려는 사람들을 향해


‘나는 너희를 어머니처럼 키웠어’


라고 한 것을 보면 아내 역시 참으로 부창부수가 아니라할 수 없다.


이들 부부의 사형 장면은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다.


권력을 잃은 자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그들의 목소리는 헛소리였다. 차우세스쿠는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재판부를 향해,


너희들은 인민의 배신자다. 역사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라는 등의 말을 하며 끝까지 자신이 루마니아의 대통령임을 강조했다.


만일 카메라가 없었다고 하면 그들 부부는 린치를 당했을 것이다. 그의 변호사는 그에 대한 변호를 포기하고 그를 향해 말했다.

- 당신이 이 나라에 해 놓은 것을 보시오. 당신은 최악이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사형일은 12월 25일이었다.


통일 광장을 향해 우리는 걸었다. 통일대로의 좌우로 즐비한 웅장한 느낌의 건물들은 한 때 공산당 간부들의 아파트였다.


- 권력이 생기면 협력자가 생긴다. 그래서 정권은 유지된다.


어떻게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지, 라는 나의 질문에 제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 일제시대 우리나라에 건너온 일본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보다 적었어.


인간이 협력을 하는 이유는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모든 협력의 마음 속에는 그런 것이 깔려 있다.


불가리아에서 들었던 북한 대사관 직원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휴가 등의 이유로 본국으로 돌아갈 때 백화점에 들러서 쌀을 산다. 그들의 이런 습관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쁜 사람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만큼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라고 외쳤던 마르크스의 말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 했다.


이 말은 공산주의를 이용해 권력만을 차지하려했던 독재자들을 향한 냉소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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