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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의 택시 드라이버

터키의 이스탄불

by 카렌

열두 시간의 비행 끝에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목적지는 시슬리라였다. 자일린의 집이 그 동네에 있었다. 거기서 이틀 밤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자일린은 집까지 찾아가는 법 두 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지하철 대신 선택한 하바타시(리무진 버스)는 극심한 정체 끝에 겨우 탁심의 어느 모퉁이에 도착했다. 까만 세상에 슬러시 같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사람들에게 택시 호객꾼이 달라붙었다. 몇몇의 호객꾼들을 물리쳤지만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작정하고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스스로 올라탄 것이다.


트렁크에 배낭을 넣고 보조석에 앉자 퉁퉁하고 느끼한 운전수가 나를 뒤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후 보조석에는 그의 친구가 와서 앉았다. 주소를 보여주자 그는 노 프라블름,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노 프라블름,


이라고 말하면 이미 문제가 생겼다는 뜻인데 나는 피곤해서 그런 생각을 잊고 말았다. 어서 눕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미리 돈을 세어 두기 위해 실내등을 켰지만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했을 텐데 의심할 만한 힘이 그땐 없었다.


택시비에 대해선 어느 정도 여유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10리라 정도 나올 것이라고 자일린이 말했지만 어서 데려다 준다면 어느 정도의 바가지는 각오하고 있었다. 운전수는 차가 막히니 고속도로를 이용하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수다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나의 형제, 친구, 걱정하지 마.


이런 말이 가장 많았다. 나는 대꾸할 힘이 없어서 웃기만 했다.

택시는 일 차선의 한적한 도로에 도착했다.


- 여기야?


라고 묻자 운전수는 여기서 걸어갈 수 있다며 창문을 내리고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미터기에는 58리라가 찍혀 있었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트렁크 문을 열고 제이와 함께 짐을 꺼내고 있었다. 젠장, 하면서도 50리라 한 장과 10리라 한 장을 건넸다. 앞뒤로 대각선상 앉아 있던 운전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5리라를 내밀었다. 나는 그게 거스름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다.


- 너 왜 5리라를 주니. 요금은 60리라인데. 네가 준 건 15밖에 안 돼.

미안한 마음에 급히 지갑을 뒤졌다. 어두운 실내에서 돈이 잘 보이지 않아 허둥지둥했다. 분명히 보았던 50리라는 없었다. 그래도 내 실수라고 생각했다. 5리라를 내가 50리라로 착각했다고.


리라는 가진 것이 그것뿐이었다.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자 부끄럽고 당황스러워졌다. 환전소를 생각했다. 창문 밖을 내다보았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서 비키라고 차들이 빵빵거렸다. 그런 곳에 주차한 것도 다 운전수의 작전이었다.


그 빵빵거림은 나를 더욱 당혹게 했다. 100유로 밖에 없는데.라고 운을 떼자 운전수는 노 프라블름, 이라며 느끼하게 웃었다.

- 내가 바꿔줄 수 있어.

100유로를 건네자 그는 잠시 후 다시 돌아보면서 10유로를 내밀었다.

- 너 왜 내게 10유로를 주냐.

그제야 나는 사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그걸 몰랐다. 영어로? 터키어로? 그 어느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어로 뭐라고 크게 말했는데 그도 지지 않으려는 듯 터키어로 큰 소리로 말했다. 그 다음엔 고함 같은 것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디선가 나타난 세 명의 터키인이 택시 유리창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 무슨 일이야?


그들과 택시 기사가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 글쎄, 이 손님이 요금을 안 주려고 하네.


뒤를 돌아보니 제이가 보조석에 탔던 남자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린 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제 택시 기사는 내 돈을 모두 뺏을 생각이었다.


- 지갑을 이리 넘겨.


하얀 머릿속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고 있었다. 나는 마음대로지만 차분히 영어를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 미안하다. 네 차를 탄 내 잘못이 크다. 지금 이백 유로밖에 없다. 이걸 다 줄 테니 오십 유로만 돌려 달라. 나는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집에까지 가야 할 차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는 내 말을 잘 알아들었다


내가 이백 유로를 주자 씩 웃으며 오십 유로를 거슬러주었다.


배낭을 메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제이를 보자 싸웠어야 했나는 생각이 들었다.


슬러시 같은 눈이 내렸다 눈은 몸에 닿자 축축하게 녹아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컴컴한 길거리에 우두커니 우리는 서 있었다.

다섯 명의 덩치를 태운 택시는 신나게 떠났다. 친구들과 함께 환호를 지르는 운전수의 웃음이 길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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