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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아줌마

불가리아의 소피아

by 카렌

불가리아 사람들은 개를 사랑한다.


아침마다 공원에 갔는데 개를 앞세우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는 굶어도 개는 먹인다. 무료 급식소에서 음식을 받아가는 사람들도 동네 개들에게 먹이를 준다고 한다. 그걸 보고 있으면 급식을 하는 사람으로서 화가 났다고 소피아 아줌마가 말씀하셨다.


한때 소피아에는 개들이 넘쳐 났다. 사람들은 개들을 열심히 먹였지만 개들은 굶주려서 사람들을 무는 일이 생겼다. 소피아 아줌마도 개에게 물린 적이 있고, 일본어를 가리키던 교수가 개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독일 정부가 불가리아의 개들을 수입하겠다고 했단다. 아마도 독일 사람이 개에게 물렸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리아 정부는 거절했다. 불가리아의 복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개는 복을 상징했다. 개를 끌고 다니는 것은 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큰 개에게 질질 끌려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행복해 보였던 것은 그게 복이기 때문이었다. 개들은 눈밭을 마음대로 뒹굴며 똥을 남겼지만 그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침마다 우리는 조심조심 공원을 산책했다. 하얀 눈 속의 똥들을 제이는 잘 발견하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산책을 마치고 아침을 먹고 낮 동안에는 소피아 시내를 구경 다녔다.


대통령궁은 특별했다. 경계가 삼엄하지 않은데다가 유명 호텔과 이어져 있었고 뒤편은 카지노였다. 내가 그런 조합을 이상하게 생각하자 아줌마는 소박한 대통령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대통령 궁. 뒤편은 카지노다. 경계는 삼엄하지 않다.


- 얼마 전에 릴라 산에 등산을 갔는데 거기서 대통령을 만났지요. 대통령은 경호원도 없이 사각 팬티 차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슈퍼마켓에서도 만났습니다. 그분은 딸의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그곳에 왔는데 혼자였습니다. 경호원은 없었지요.


저녁을 먹고 난 다음 차를 마시면서 낮에 본 것들에 대해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물들의 문들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고 문의 손잡이가 묵직했다. 그래서 문을 당길 때 힘이 들었는데 그만큼의 위엄도 느껴졌다고 내가 말하자 아줌마가 알려주었다.


- 힘들게 문을 만든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랍니다.


사실인지 농담인지 믿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재밌는 이야기였다.


- 아파트가 언제 어디서 처음 세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산 국가들은 아파트를 무척 좋아했어요. 사람들을 좀 더 쉽게 감시할 수 있거든요.


아줌마의 집은 층간 소음이 좀 있었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며,


- 사람들의 감시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 일부러 층간 소음을 만든 거 아닐까요,


이렇게 말하자 제이와 아줌마가 작게 웃었다.


저녁을 먹고 소피아 아줌마와 이야기하는 시간이 나는 참 좋았다.


아줌마는 한인 교회에서 불가리아 노인들을 상대로 한 무료 급식 봉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 그 일을 시작했을 때 불가리아 노인들은 무척이나 뻣뻣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불가리아 정부에서 돈을 대고 한국인들을 고용해서 국민들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과거 불가리아는 좋은 국가였다. 20년을 일하면 정부는 그 국민에게 집을 주었고 살기에 충분한 연금을 주었다. 실업자가 없도록 일을 잘게 나누었다. 가령 민원인이 관공서에서 서류를 하나 발급받아야 할 때, 돈을 받는 사람과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과 도장을 찍는 사람과 영수증을 발급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나중에 한국인들의 자발적인 모금에 의해 무료급식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불가리아 노인들은 많이 겸손해졌다고 한다. 거칠던 노인의 태도도 부드러워졌고, 연말이 되면 가끔 감사의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급식소의 분위기는 개선되었다. 처음 급식이 시작되었을 때 노인들은 음식을 받을 그릇을 각자 준비해서 왔다. 그게 그렇게 더러울 수가 없더라고 아줌마가 말했다. 그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인회에서는 따로 그릇을 준비했다. 그렇게 점점 급식소는 좋아졌는데 최근에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다고 한다. 식당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즐기던 노인들의 3분의 2 정도가 음식을 받자마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서도 급식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소피아 아줌마가 소피아에 온 것은 10년쯤 된 일이다.


처음에 한인민박은 인기가 꽤 좋았다. 지금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


- 젊은 사람들은 남녀가 어울리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글쎄 그걸 내가 막았거든요.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남녀가 한 방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면서요?


우리가 머무는 동안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 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잠자리도 따뜻하고 음식은 너무도 맛있어서 외식이 부럽지 않았고 아줌마의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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